대학 입학 전형에서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이른바 ‘어퍼머티브액션(Affirmative Action)’에 대해 미국 연방대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미국의 국론이 또다시 반으로 쪼개지고 있다. 특히 예상되는 대립 양상이 민주당의 주요 지지 기반인 흑인·히스패닉 대 공화당 지지층이 많은 백인으로 나타나면서 내년 미국 대선을 뒤흔들 이슈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9일(현지 시간)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대법관 6 대 3의 의견으로 어퍼머티브액션을 위헌이라고 한 판결과 관련해 “오랫동안 대학들은 개인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기술이나 학습이 아니라 피부색이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려왔다”고 취지를 밝혔다. 그는 “차별이나 영감 등 인종이 학생들의 삶에 미친 영향을 고려할 수는 있다”면서도 “학생들은 인종이 아니라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대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종에 따른 각자의 경험은 입학 전형의 고려 대상이지만 인종 자체가 입학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소수 의견을 낸 대법관은 이번 판결이 인종별 사회구조적 요인을 반영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진보 성향의 흑인 판사인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은 “대법원은 다수 의견으로 모두를 위해 색맹이 될 것을 법으로 선언했다”며 “하지만 법 적용에 인종이 무관하다고 해서 인생에서도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다수 의견을 반박했다. 히스패닉계 여성 대법관인 소니아 소토마요르는 “오늘 법원은 길을 가로막고 수십 년 동안의 중대한 진전과 선례를 되돌렸다”고 탄식했다.
소수인종 배려를 명분으로 또 다른 소수인종인 아시아계를 되레 차별했던 각 대학의 관행이 자충수가 된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프렌치는 ‘하버드가 어퍼머티브액션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소송 피고인 하버드대가 적극적으로 아시아계 지원자들을 차별했다는 증거가 압도적이라는 것이 핵심 팩트”라고 평가했다. 대법원은 이날 다수의견서에서 학업성적 하위 40%인 흑인 학생의 하버드대 입학 확률이 상위 10%의 아시아계보다 높다는 사실을 판결 근거로 제시했다.
이번 판결의 영향은 미국 대학 전반으로 미치게 된다. 비슷한 제도를 운영할 경우 모두 위헌이 되기 때문이다. 하버드대에 따르면 현재 미국 대학의 40%가 입학 전형에서 인종을 고려하고 있다.
이번 판결이 대입 전형을 넘어 인종별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찬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판결은 누가 미국 엘리트 기관에 들어가고 최고의 직업을 얻을지에 대한 국가적 논쟁의 새로운 변수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에 사회적 갈등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대법원 앞에서는 어퍼머티브액션 폐지를 지지하는 시위와 대법원의 판결을 비판하는 시위가 동시에 진행됐다. 일각에서는 앞서 대법원의 낙태권 폐지 판결이 여성 유권자를 결집해 민주당의 중간선거 승리에 기여한 것처럼 어퍼머티브액션이 흑인과 히스패닉 유권자를 단결시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치권은 극도로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법원의 위헌 판결에 강력히 반대한다”며 “정상적인 법원이 아니다”라고 맹비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대학은 인종적으로 다양할 때 더 튼튼하다”며 대학들에 판결을 위배하지 않으면서도 다양성을 확보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당부했다.
반면 공화당 소속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미국을 위해 훌륭한 날”이라며 “완전히 능력에 기반을 둔 제도로 돌아가는 것이며 이게 옳은 길”이라고 밝혔다.
하버드대는 “대법원의 판결과 하버드의 가치를 공존시키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