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두 번째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가 “(북한이 호응한다면) 북핵 문제·인권문제·경제협력문제를 삼위일체로 묶어서 논의하는 ‘한반도형 헬싱키 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새로운 남북관계 정립 가능성을 언급했다. 윤석열 정부의 ‘원칙 있는 대북정책’ 기조에 발맞춰 통일부가 자유·인권·법치 등 가치중심 정책으로의 변화를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후보자는 이날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에 마련된 후보자 사무실로 첫 출근을 하며 기자단에 “통일부 역할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앞으로 원칙이 있는 대단히 가치 지향적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김 후자가 언급한 헬싱키 프로세스는 1975년 미국과 소련, 유럽 등 35개국이 핀란드 헬싱키에서 상호주권존중·전쟁방지·인권보호에 관해 체결한 협약이다. 서방국가들이 이를 토대로 인권문제를 지속 제기하면서 소련과 동유럽 등 공산권의 붕괴를 촉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헬싱키 협약은 기존 진보 정부인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도 언급됐었던 개념이다. 하지만 당시 이들 정부는 인권 등 개별 가치에 중점을 두기보다 과정 자체에 의미를 뒀었다. 김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가 서명한 9·19 군사합의에 대해 “정책은 연속성이 중요하지만 변화한 상황에서는 남북관계 합의 등을 선별적으로 고려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북측 대응에 따라 일부를 재검토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5년간 공석이었던 북한인권대사를 임명하고 유엔총회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에 이름을 올리는 등 그동안 대북정책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인권’을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납북자 문제 등에 높은 관심을 보였던 유엔과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황준국 주유엔대사 역시 이날 열린 유엔 심포지엄에서 “윤석열 정부는 보편적 가치와 규범 중심 기조하에 강제 실종 문제를 포함한 북한 인권 문제에 적극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며 북한의 인권문제를 안보리 주요의제로 논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인권 문제로 북한을 압박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한반도 문제에서는 남북 관계의 특수성이 상당히 중요하다. 북한을 주적으로 간주하는 등 주권을 존중하지 않는 상황에서 인권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북한 정부를 배제해버리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북한의 비핵화와 남북 경제협력 과정에서 인권 문제는 필수적으로 다뤄져야 하는 문제라는 주장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인권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비핵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초입 (단계)에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제재를 해제하는 단계로 가게 되면 입구에서부터 딱 걸리게 되어 있다”며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부과하고 있는 제재가 해제되기 위한 핵심 조건 중에 하나가 바로 북한의 인권 개선이고 중국을 제외한 국제사회가 북한의 투자하기 위한 조건으로 인권 조항으로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통일부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신청을 계기로 북한과의 대화 재개 가능성을 모색할 방침이다. 현 회장의 방북이 이뤄지려면 북측과 먼저 교섭해 방북 동의서를 얻고, 이를 바탕으로 방북 신청을 한 뒤 통일부 승인을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