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바이오

[로터리] 보건의료 신뢰를 위한 정부의 수탁자 책임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




영화 ‘배트맨’을 보면 배트맨이 외롭게 고담시티의 야경꾼으로 활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결정적인 조력자가 있다. 각종 장비부터 전략까지 브루스 웨인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집사, 바로 앨프리드 페니워스다. 배트맨에게 페니워스가 있다면 금융 고객에게는 펀드매니저가 있다. 투자금을 자신의 돈처럼 신중하게 관리하며 수탁자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기업 분석 보고서 작성 시 금전·비금전적 편의를 제공받는 것을 이해 상충의 비윤리적 행위로 금지하는 이유다.



금융 서비스뿐 아니라 의료 서비스에서도 배트맨과 페니워스의 관계가 존재한다. 바로 환자와 의사다. 환자의 생명 보호와 건강 증진을 위해 최선의 진료를 행하는 것이 의사로서 의무다. 이는 의료법이 영리 의료기관을 허용하지 않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의료진의 판단과 선택이 경영상의 이유로 왜곡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품 개발보다 의사·병원과의 관계 또는 불법 리베이트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는 제약사와 이런 약한 고리를 파고드는 의료인들은 나쁜 집사로 건강보험 생태계를 허약하게 만든다.

관련기사



최근 방문한 소아·청소년 전문 병원 ‘우리아이들병원’에서는 2차 병원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동네 의원과 대학병원의 소아과 의료진이 메신저로 실시간 소통하며 어린 환자를 적정한 병원으로 제때 전원하기 위한 노력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었다. 필자 또한 현장의 의료진을 보며 페니워스의 모습을 떠올렸다. 연간 770만 명 규모의 응급 환자를 치료하며 생명을 살리는 응급실의 의료진과 응급구조사·구급대원들까지 모두 그렇다.

의료 현장의 노력에 발맞춰 정부 역시 의료인이 제대로 진료하고 간호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 수가 등 각종 보건의료제도와 관련 재정을 정비하고 개선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중증 소아와 분만·응급의료 등 필수의료를 살리고 건강보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것을 보건의료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공공 정책 수가를 국정과제로 채택하고 기존 수가제도의 약점을 보완해 보다 많은 의료인이 페니워스로 역할을 수행하도록 지원하려 한다.

민주공화국에서는 공무원 또한 국가와 국민을 위한 페니워스가 돼야 한다. ‘저 사람의 말이라면 틀림없어’라며 주인이 믿을 수 있는 수탁자가 필요하다. 건강보험료를 인상하는 과정에서도 현행 제도의 운영과 집행 과정 전반에 누수가 없다는 신뢰를 국민에게 심어주는 것이 첫 단추가 돼야 한다.

정부가 올 2월 발표한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 대책은 건강보험 재정에 낭비와 누수를 없애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주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감언이설만 일삼는 집사는 믿음을 심어줄 수 없다. 결국 주인의 호주머니는 텅텅 비게 될 테니 말이다. 내 돈처럼 주인의 돈을 걱정하는 신실한 집사가 국가와 국민에게는 필요하다. 나아가 의료인과 의료기관, 제약 회사 등 보건의료의 공급자들도 모두 함께 국민을 위한 페니워스가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운영하고 개혁해 나가는 것이 바로 정부의 수탁자 책임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