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칠성개시장 “보상 없이 폐업 못해”…인근 상인들도 울상
초복을 맞아 ‘식용 개고기 허용’이라는 해묵은 논쟁이 재점화했다. 국회와 지방의회에서 개고기 식용을 금지하는 법안과 조례가 연이어 발의된 가운데 생존이 걸린 업계는 이에 반발해 적절한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대구 북구 칠성개시장의 표정은 어두웠다. 40년째 보신탕을 팔아왔다는 70대 김모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난 10일 “요새는 장사가 잘 안돼서 주말이 아니면 손님도 없어서 한산하다”며 “동물단체에서 계속 민원을 넣어서 가게 규모를 반으로 줄였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다른 가게의 70대 업주도 “보상 얘기가 쏙 들어가서 진전이 아예 없다. 지자체에서 나가라고 하면서 보상을 안 하면 어쩌냐”라며 “충분한 보상만 있으면 나갈 의사가 있다”고 강조했다.
칠성개시장의 ‘파급 효과’가 줄어들어 이웃 상인들도 울상이다.
이 시장 인근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60대 상인은 “보신탕집 다 없애버리면 우리 같은 상인들도 손님이 뚝 끊긴다”며 “보신탕 가게를 찾는 손님 덕을 보고 있는데 (없애면) 다 죽으라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때 부산 구포시장, 성남 모란시장과 함께 전국 3대 개시장으로 손꼽혀 온 칠성개시장은 현재 13곳의 가게가 남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동물단체는 대구시가 칠성개시장 폐업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인섭 동물보호단체 라이프 대표는 "칠성개시장 상인들은 대부분 보신탕 가게를 그만둘 의사를 가지고 있다"며 "부산시가 구포시장을 없애기 위해 400억원을 들였는데 칠성개시장은 훨씬 적게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구시는 부산시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나설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뜬 장이나 도살장 같은 불법 시설은 지난 2021년도에 철거한 상태"라며 "상인들과 보상 규모에 관해 입장 차이가 있어서 폐업 논의가 진전이 없다"고 설명했다.
설문서 “개고기 안 먹겠다” 85%…육견협 “취식 금지는 자본주의 어긋나”
개고기 식용을 놓고 찬반 양론이 엇갈리고 있지만 반대 의견이 압도적인 게 사실이다.
동물보호단체 한국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한국 HSI)이 지난해 시장조사 기관 닐슨코리아에 의뢰해 전 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의 개고기 소비와 인식 현황 조사’ 결과 "향후 개고기 식용을 하지 않겠다"는 답변은 85%에 달했다. 2000년 한국식품영양학회지에 실린 인식조사에서 응답자 1502명 중 83%가 개고기 식용을 찬성했던 것에 비해 국민적 인식이 완전히 달라진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개고기 산업도 사양길에 접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한때 연 1000만 마리 이상이던 개고기 소비량은 이제 40만마리 안팎으로 확 줄었다. 도축업소 수도 뚜렷하게 감소했다. 특히 서울의 경우는 2019년 경동·중앙시장 내 마지막 개 도축업소가 문을 닫아 현재는 단 한 곳도 찾을 수 없는 상태다.
대한육견협회도 개고기 식용이 종식을 향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제재가 없어도 자연스레 소멸할 것이란 주장이다. 주영봉 대한육견협회 생존권 투쟁위원장은 “사양길을 걷고 있는 개 식용 산업을 굳이 법 등으로 금지하지 않더라도 몇 년 뒤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문제”라며 “지금까지도 몸이 약한 일부 사람들이 몸보신을 위해 주기적으로 찾는 건강 음식을 금지하는 것은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아시아경제를 통해 지적했다.
현행법 ‘식용견’ 허용하면서 도살 유통·기준 없어…위생 문제 자초
기존 제도의 모순도 갈등의 불씨로 작용했다. 현행 축산법에서는 개를 가축으로 분류해 식용 목적으로 농장에서 키울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런데 축산물 위생관리법에서는 개를 가축으로 인정하지 않아 도살이나 유통에 대한 기준이 없다.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개를 사육하다가 도축해 유통하는 일이 가능한 원인이다.
또 식품위생법상 개는 식품원료가 아닌 탓에 가공·조리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그런데 ‘개고기 식용’ 자체를 금지하는 조항이 없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아직 보신탕을 먹어온 문화가 장·노년층 위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보신탕이나 사철탕 음식점은 계속 영업을 해올 수 있었다. 올해 2월 농림축산식품부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고기를 취급하는 음식점은 전국적으로 1666개에 달한다.
이에 최근 정치권에서는 개고기 식용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서울시의회에서 ‘개·고양이 식용금지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조례안은 원산지·유통처 등이 불명확한 비위생 개고기를 서울시가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개고기를 다루는 유통업체나 식품접객업소 등의 업종 변경을 유도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식용 금지를 서울시장의 책무로 규정하고 이에 필요한 시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도록 했다. 다만 시의회는 사회적 합의가 아직 안 된 점 등을 고려해 해당 조례안에 대한 심사를 보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에서도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개 식용 종식을 위한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해당 법안은 식용 목적으로 개를 사육하거나 도살하는 등의 모든 행위는 물론, 개를 사용해 만든 음식물이나 가공품을 운반하거나 보관, 판매하는 행위를 알선하는 것까지 전면 금지하고 있다. 다만 이 법안 역시 국회를 통과해도 5년간 시행 유예기간을 뒀다.
“개고기는 전통 문화” vs “거부 정서 뚜렷” 전문가도 대립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권훈정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개고기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현재 개고기는 질병에 걸리거나 건강하지 못한 개가 도축돼 유통되더라도 법의 감시망 밖에 있어 소비자들이 알 길이 없다"며 "개고기는 오래 전부터 내려온 우리 문화인 만큼 이를 인정하고 법안에서 건강한 개고기 소비를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아시아경제를 통해 촉구했다.
반면 김성호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제적 시류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김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개를 합법해 식용하는 나라는 없다. 만일 한국이 합법적으로 개 식용의 문을 열어준다면 이 같은 결정을 한 최초의 나라가 되는 것"이라며 "국민 정서상 거부감도 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개 식용 합법화는 현실에 맞는 논의가 아니다"라고 매체를 통해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