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쟤 좀 봐.” “그러게, 못할 줄 알았더니 곧잘 하네.”
촬영에 맞춰 발랄한 헤어 스타일과 메이크업으로 변신한 방신실이 카메라를 보고 방긋 웃었다. “이렇게 꾸미고 촬영하는 건 난생 처음”이라며 어색해 하던 그는 막상 카메라 앞에 서자 자연스럽게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어느새 즐기고 있었다. ‘반쪽짜리 시드’로 올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데뷔해 다섯 번째 출전 대회에서 초고속으로 첫 우승을 신고한 그는 필드에서처럼 스튜디오에서도 적응이 빨랐다. 멀찍이 앉아 촬영을 지켜보던 방신실의 부모님은 외동딸이 선보이는 뜻밖의 재능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첫 우승하면 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고 실제로 했나.>>>
“가족끼리 맛있는 거 먹고 싶었다. 고기 먹고 싶었다. 대회 기간엔 고기 먹으면 손이 부을 수 있으니까 되도록 안 먹는다. 식단 관리를 한다. 우승하고 나서야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이틀 동안 소고기만 먹었다.”
우승 축하 중에서 가장 특별했던 건?>>>
“하나하나 다 특별했지만 너무 대견하다는 (김)민별이의 축하가 그중에서도 크게 와 닿았다. 엄마끼리도 친할 정도로 워낙 가까운 사이기도 한데, 우리는 뭐랄까 서로 존중해주는 사이다. (갑상샘 이상으로) 아팠을 때도 민별이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정회원 선발전까지 끝까지 가야 한다’고 끊임없이 용기를 줬다.”(방신실과 김민별은 올 시즌 신인상 타이틀을 다투는 사이다.)
우승 후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느낀 것은?>>>
“너무 바빠졌다. 소화해야 할 일정이 많아졌다. 힘들긴 하지만 즐겁게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
부모님의 시선이 달라지진 않았나.>>>
“엄마 아빤 한결같으시다. 아빤 골프 처음 시키실 때부터 기본기를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고 강조하셨다. 골프는 매너 운동이고 그래서 인성이 무엇보다 좋아야 한다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강조하신다.”
아버지가 아마추어 골프 고수라고.>>>
“태권도를 하셨던 아빠가 운동 신경이 좋다. 군대도 특공대 나오셨다고 들었고. 골프 입문 1년 만에 ‘싱글’을 치셨다. 드라이버로 270~280야드를 보내고 스윙 좋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
키가 180㎝에 가까운 방신실의 아버지 방효남 씨는 “708특공연대 나왔다. 거기서도 태권도를 가르쳤다. 제 나이가 이제 예순이라 예전처럼 멀리 치진 못하지만 딱히 레슨을 받지도 않은 것 치곤 제법 잘 치는 편이었다”고 했다.
골프 처음 배웠을 때 기억나는지.>>>
“엄마랑 아빠가 골프 좋아하던 때여서 연습장에 따라다니다가 나도 해보고 싶다면서 아빠 클럽을 뺏어서 휘둘러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가 일곱 살이었고, 처음 아카데미 등록해서 배우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1학년 때다. 아카데미 다니면서도 아빠랑 따로 여러 가지 훈련을 많이 했는데 쇼트게임 연습장에서 샷을 하면 아빠가 손으로 받아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300야드 장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여전히 뜨겁다. 어떻게 훈련했고 스윙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건 뭔가.>>>
“겨울 훈련 동안 스윙 스피드 늘리는 도구로 열심히 훈련했다. 무거운 것, 낭창거리는 것, ‘딸깍’ 소리 나는 것 등 도구 4개를 번갈아가면서 반복 연습했다. 멀리 칠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힙턴을 빠르게 하되 제자리에서 돈다는 느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드라이버 말고 다른 클럽으론 얼마씩 보내나.>>>
“3번 우드로 240야드, 18도 유틸리티 클럽으로 230야드, 7번 아이언으로 165야드를 본다.”
골프하면서 지금까지 가장 뿌듯한 기록은?>>>
“정규 투어 와서 우승한 것도 뿌듯한 기록이지만 2019년 국가대표에 처음 선발됐을 때의 기분이 골프하면서 가장 짜릿하고 뿌듯했던 기억이다. 선발 제도가 지금과 달라서 선발전에서 경쟁이 엄청 치열했다. 2등으로 뽑혔는데 그때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그것도 2019년에 국가대표 된 거다. 그 전에 성적이 뜻대로 나오지 않아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대표 뽑히면서 그런 것들이 다 잊혔다.”
골프 인생에서 ‘미친 라운드’ 하루를 꼽는다면.>>>
“KLPGA 드림(2부) 투어 시드전 예선이었다. 군산CC에서 7홀 연속 버디를 포함해 10언더파 62타를 쳤다. 스스로도 놀랐지만 한편으론 ‘본선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생각했다.”
소셜미디어 활동을 하지 않던데.>>>
“한 번 보면 계속 보게 되고 운동에 집중이 안 될 것 같아서 하지 않는다. 근데 워낙 그런 쪽에 관심이 적은 것 같기도 하다.”
어머니 유지윤 씨는 “게임도 마찬가지다. 한창 운동할 때 게임에 빠지면 어쩌나 싶어 신경을 많이 썼는데 몇 번 하는가 싶더니 흥미를 가지지 않더라”고 했다. 방신실은 “친구들은 ‘배틀그라운드(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슈팅 게임)’ 많이 했는데 저는 이상하게 재미를 못 느끼겠더라”고 덧붙였다.
그럼 어떤 걸 하면서 여가를 보내나.>>>
“영화 보거나 쇼핑 하거나 그림도 그린다. 영화는 공포 영화. 너무 무섭다고 소문난 영화도 저는 재밌기만 하다. 그림은 어릴 때 정말 좋아해서 미대를 가고 싶단 마음을 먹었었고 부모님도 그쪽으로 진로를 생각하고 계셨다. 시간이 된다면 그림 쪽을 정식으로 배워보고도 싶다. 집에서 음악 틀어 놓고 춤추는 것도 좋아한다. 잘 추진 못한다. 국가대표팀에서 춤 못 추는 걸로 에이스였다.”
미술 하려다 어떻게 골프로 마음을 정했나.>>>
“연습장에서만 치다가 처음으로 필드 나간 게 백제CC에서 가족 라운드였다. 드라이버를 치는데 빵빵 떠서 멀리 나갔다. 그때 그 좋았던 느낌으로 쭉 하게 됐다.”
아버지 방효남 씨는 “정식으로 골프를 배우게 한 게 김종필 프로님(한희원·김주연·허윤경·장하나 등을 가르친 유명 레슨 프로)을 만나면서부터인데 그 프로님이 요모조모 보시더니 골프 계속 안 시키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라고 하시더라”고 했다. 어머니 유지윤 씨는 “저는 미술 쪽으로 가야 한다고 엄청 반대했는데 프로님의 말에 워낙 확신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평소에 ‘이건 꼭 지킨다’ 하는 것은?>>>
“하루 일과 끝내고 집에 오면 꼭 ‘감사 일기’를 쓴다. 감사했던 일들, 감사했던 분들을 떠올리면서 다섯 줄을 적는다.”
우승한 날 적은 감사 일기엔 어떤 내용이 있나.>>>
“그동안 도움 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가 대부분인데 이것도 한 줄 적었다. ‘우승한 나에게 감사’.”
아깝게 우승을 놓친 날도 있었다. 그날은 뭘 적었나.>>>
“그땐 ‘좋은 경험한 것에 감사’라고 썼다.”
평소에 ‘이건 절대 하지 않는다’ 하는 건?>>>
“밥 남기는 거. 어릴 때부터 부모님한테 밥 남기면 안 되고 낭비해선 안 된단 얘길 많이 들은 영향 같다.”
즐겨 먹는 골프장 음식 메뉴는?>>>
“거의 매번 국물 있는 메뉴를 고른다. 된장찌개나 해장국 같은. 간단히 후루룩 먹을 수 있는 거면 다 좋다.”
남자 선수 못지않은 스윙 스피드를 내는데 남자 대회나 스윙도 관심 있게 보나.>>>
“남자 대회 보는 걸 좋아한다. 특히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많이 본다. 타이거 우즈의 스윙은 유튜브에 있는 건 다 본 것 같다. 어프로치, 퍼트까지.”
가장 아끼는 클럽은?>>>
“퍼터다. 원래 일자형(블레이드)을 쓰다가 변화를 주고 싶어서 올 시즌부터 말렛 퍼터를 쓰고 있는데 만족스럽다.”
장타로 유명해졌지만 퍼트도 아주 잘한다. 퍼트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뭔가.>>>
“끌어안고 자면 더 잘될까 싶어 퍼터를 고무줄로 몸에 묶고 잔 적도 있다. 퍼트는 무엇보다 확신, 믿음이 중요한 것 같다. 믿음을 갖고 ‘들어갈 거야’ ‘들어간다’ ‘홀에 붙인다’ 주문을 걸면서 굴린다.”
골프장 안팎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나.>>>
“음악 듣는 게 가장 효과적인 것 같다. 팝송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찰리 푸스(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의 곡들을 엄청 좋아한다.”
들으면 늘 가슴 설레는 말이 있는지.>>>
“‘신실이 귀엽다’는 말. 주변의 언니들이나 팬 분들이 지나가면서 ‘신실이 귀엽다’ ‘어머, 방신실 귀엽다’고 하시는데 그런 말은 들을 때마다 기분 좋다.”
골프 하면서 쳐본 코스 중 잊히지 않는 곳은?>>>
“작년에 오거스타 내셔널 여자 아마추어 대회에 나갔다. 어릴 때 마스터스 대회 TV 중계로 많이 본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을 직접 밟아보니 왜 그렇게 유명한지 알겠더라. 잔디 상태가 디보트(팬 자국) 하나 없이 진짜 깨끗했다. 그린도 정말 유리판 같고. 환상적이었다.”
골프 말고 제일 좋아하는 운동은?>>>
“배구 경기 보는 거 좋아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배구 선수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좋아한다. 김연경 선수 정말 멋있다. 테니스 경기 보는 것도 좋아해서 아빠랑 같이 중계 보는 게 참 좋았다. 로저 페더러 선수 좋아한다.”
징크스가 있나. 야디지북(코스 정보를 담은 책자)에 따로 적는 말도 있는지.>>>
“징크스는 없고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야디지북에 써 놓는 것도 딱히 없는데 예전엔 이랬다. 스스로에게 지금 어떤 상태인지 물어봐 주고 그걸 적어 놓은 뒤 세 홀에 한 번씩 들여다보곤 했다.”
나의 보물 1호는?>>>
“올해 분양 받은 강아지 두 마리가 보물이다. 미니비숑과 포메라니안종이다.”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만화 캐릭터 ‘뿌까’ 아시는지. 닮았단 말을 정말 자주 들었다. 옛날엔 뿌까 인형도 많이 모았다.”
이번 시즌 끝났을 때 어떤 마음으로 돌아보면 좋을까.>>>
“감사하게 관심을 많이 받으면서 동시에 부담이 좀 생기긴 했는데 좋은 쪽으로 생각해서 에너지로 삼으려 한다. 시즌 끝나고 ‘후회 없이 잘 마무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게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서울경제 골프먼슬리]
PROFILE
출생: 2004년 | 정규 투어 데뷔: 2023년 | 소속: KB금융그룹
주요 경력:
2018년 송암배 아마추어선수권 준우승
2019년 블루원배 한국주니어선수권 우승
2020~2022년 3년 연속 국가대표
2022년 오거스타 내셔널 여자 아마추어 8위
2023년 KLPGA 투어 E1 채리티 오픈 우승, NH투자증권 챔피언십 3위, KLPGA 챔피언십·대유위니아 MBN 오픈 4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