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모르는 사람의 손이 더 따뜻하리라

이기철


내일 이 땅에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화성엔 가지 않을 거야



거기엔 내 좋아하는 참깨와 녹두콩을 심지 못하므로

오늘 핀 도라지꽃 그릴 한 다스 색연필이 없으므로

일기책 태운 온기에 손 쬐며 쓴 시를

최초의 목소리로 읽어 줄 사람 없으므로

지구 아니면 어느 책상에 앉아 아름다운 글을 쓰겠니?

노래가 깨끗이 청소해 놓은 길



어느 방향으로 책상에 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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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의 왼쪽 가슴에 달아 줄 이름표를 만들겠니?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세상 한쪽이 더워진다고 쓴 말을

어디에 보관해야 정오까지 빛나겠니?

샘물이 솟는 곳에서 살고 싶다던 사람을 서서 기다리면

나무에 남은 온기가 절반은 식어도

모르는 사람의 손이 따뜻하리라





토끼가 떡방아 찧는 달나라도 가보고 싶고, 은하수 강변에 가서 멱도 감고 싶었지요. 엄마 따라 참깨밭 녹두밭 김매느라 더위도 먹어 봤지요. 도라지꽃 봉오리 터트리며 낯선 도시로 가고도 싶었지요. 그림일기 몰아 쓰며 날씨 기억하느라 애도 먹어봤지요. 어쩌다 대문 앞 비질하는 것도 성가셨지요. 기를 쓰고 달아나온 이 별의 길목이 그렇게 아름다웠군요. 아침의 왼쪽 가슴에 이름표 다는 법을 이제야 배우네요. 내 손이 무연히 따뜻해진 이유를 알겠네요.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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