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으로 미국 내에만 팹이 18개 이상 건설되면서 부품 업체들도 특수를 앞두고 저마다 미국 내 시장에 힘을 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반도체 장비 부품업체 관계자)
11일(현지 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 센터에서 열린 북미 최대 반도체 장비 전시회인 ‘세미콘웨스트 2023’. 저마다 목걸이형 명찰을 단 이들이 삼삼오오 전시회장에 모여들었다. 일반적으로 부스마다 사업 소개를 듣고 옮겨다니는 관람객들과 달리 한 부스에 길게 머물며 실질적인 파트너십 방안을 논의하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이전만 해도 반도체 장비 부품 업체들의 경우 미국 시장이 매출상, 전략상으로 중요한 곳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미국 시장의 성장으로 점유율 판세를 뒤집겠다는 비장한 모습도 엿보였다. 반도체 진공 측정 장비 3위 업체인 파이퍼 배큠도 펌프, 헬륨 감지기 등 제품을 대거 들고 전시회에 참여했다. 램리서치와 마이크론 등 주요 고객사를 갖고 있는 파이퍼 배큠의 준 디로라이스 고객 담당 책임자는 “현재 8억 달러의 매출을 내고 있지만 미국 시장의 성장으로 내년 매출이 25% 늘어난 10억 달러까지 성장하는 게 목표”라며 “이번 특수를 맞아 2위까지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품 업체마다 특화된 제품군의 시장 규모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클리닝 공정에 사용되는 습식 벤치(Wet bench) 등에 특화된 1위 업체인 오스트리아의 시코넥스는 전체 시장 점유율이 50% 이상이지만 연간 매출은 1억 유로(1300억원) 수준이다. 시코넥스 관계자는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시장 규모 자체가 빠르게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기대감을 전했다.
보통 이들 업체들이 본격 특수를 맞는 건 팹이 지어지고 나서 내부 환경을 구축하는 시점부터다. 이 때문에 지금부터 합작 법인 등을 설립해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국내 피팅 밸브 업체인 디케이락(DK-LOK)도 지난 5월 미국에 합작 법인인 디케이락 아메리카를 설립했다. 직접 전시회에서 세일즈에 나선 김현수 디케이락 대표는 “미국 시장 수출 금액이 50%씩 성장하고 있다”며 “올해 전체 매출이 1300억으로 전망되는데 미국 시장이 크게 견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디케이락은 미국 내 반도체지원법(CHIPS)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우리나라 업체들의 존재감도 뚜렷했다. 이날 전체 참가사 600여곳 중 50여곳이 우리나라 업체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실리콘밸리 무역관이 주도한 한국관 내 부스를 차린 11곳의 업체들도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창업 3년 차인 인공지능(AI)을 통한 수율 개선 솔루션 업체 에이아이비즈(AIBIZ)도 미국 시장 진출 의지를 시사했다. 현재 DB하이텍과의 협업을 통해 반도체 생산 장비 30대에 솔루션을 탑재해 이를 3개월 내 400대까지 확대할 전망이다. 하승재 에이아이비즈 대표는 “반도체 수율을 1%포인트 개선하면 조 단위 매출을 내는 기업의 경우 100억 이상의 매출 진작 효과가 있다”며 “현재 AI 알고리즘으로 수율을 개선하는 솔루션은 뚜렷한 강자가 없기 문에 승산이 있다”고 자신했다.
반면 이날 중국 업체들을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않았다. 미중 갈등으로 인해 중국 장비 업체들이 사실상 미국과의 거래가 어려워짐에 따라 현재는 반도체 공정 소모품 업체들 중심으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다. 에폭시 공정의 약품 제조 업체인 중국의 CX테크 기업 관계자는 “소모품까지는 제재가 없기 때문에 참석했다”면서도 “중국 참가 기업이 10여곳밖에 눈에 띄지 않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