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엔저 현상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지난달 말까지 145엔을 넘었던 엔·달러 환율이 보름도 안 돼 130엔대로 하락(엔화 강세)했다.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 수정 가능성,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등에 따른 것으로 일각에서는 엔화 가치가 강세로 전환되는 변곡점을 맞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12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전날 140.34엔에 마감했던 엔·달러 환율은 이날 장중 139.37엔까지 하락했다. 이는 종가 기준으로 지난달 13일 이후 한 달 만의 최저치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달 29일까지만 해도 장중 145엔을 넘었지만 최근 5거래일 연속 하락하더니 이날 130엔대로 떨어졌다. 블룸버그는 “통화옵션 시장에서도 투자자들이 엔화 강세에 베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는 27~28일 BOJ 정책결정회의에서 수익률곡선통제(YCC) 정책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금융 완화 정책이 재검토될 수 있다는 관측에 따른 것이다. 현재 BOJ는 10년물 국채금리 변동폭을 0% 기준 ±0.5%로 두고 이 범위에서 벗어나는 국채 매물을 무제한으로 매입하는 YCC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 이 정책을 수정하거나 아예 폐지하는 방식으로 통화 긴축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예상으로 엔화가 강세를 보이는 것이다. 미국의 물가 상승률 둔화로 고금리가 예상보다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짙어진 것도 주된 이유다. 이는 달러 약세로 이어져 엔화를 포함한 주요국 통화가치를 밀어 올렸다.
블룸버그는 “엔화가 강세로 전환되는 터닝포인트에 서 있다는 신호가 커지고 있다”며 “엔화강세론자들은 전 세계 경기 침체가 시작될 때 엔화 가치가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유럽·영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글로벌 경제가 침체되면 안전자산인 엔화의 몸값이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반다리서치의 비라즈 파텔 투자전략가는 “우리는 글로벌 경기 침체 위험에 다가서고 있으며 실제로 침체에 빠질 확률은 올해 말과 내년으로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며 “세계 경제가 침체할 경우 엔화 가치는 20%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외에 일본 외환 당국이 엔저 현상을 막기 위해 여차하면 외환시장에 개입할 준비가 돼 있고 일본 경제도 꿈틀대 BOJ가 돈줄을 조일 일만 남았다는 평가도 엔화강세론을 뒷받침한다. UBS의 도미니크 슈나이더 외환부문장은 올해 말 엔·달러 환율이 128엔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고 캐피털이코노믹스도 연말에 130엔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블룸버그가 전문가들을 설문조사한 결과 엔·달러 환율 전망치는 올해 9월 말 138엔, 연말 135엔, 내년 3월 말 132엔, 내년 6월 말 128엔으로 나타났다.
다만 엔화가 계속 약세를 보일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JP모건은 7일 올해 말 엔·달러 환율 전망치를 기존의 142엔에서 152엔으로 올려(엔화 약세) 잡았다. 최근 ‘미스터 엔’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대장성(현 재무성) 차관도 “내년 환율이 160엔 수준을 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