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두 달 만에 광명에서 국민평형(전용면적 84㎡) 아파트의 분양가가 2억 원이나 올랐네요. 인근 급매를 잘만 찾으면 1억~2억 원 더 저렴한 가격에 매수가 가능한데 굳이 수요자들이 청약할지 의문입니다.” (광명시 광명동 A 공인중개사)
주택 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분양가가 내리기는커녕 올해 들어 공사비 인상, 고물가, 규제 완화 등의 여파로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분양가는 12일 기준 평당 1936만 원을 기록하며 2000만 원에 바짝 다가섰다. 4일 기준으로는 2101만 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로 인해 집값이 급등했던 2020년 이후 지난해까지 인근 시세보다 평균적으로 낮았던 경기도의 신규 아파트 분양가는 올해 상반기 기존 아파트 매매가를 넘어섰다.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경기도의 평균 분양가는 평당 1673만 원으로 매매가 평균(1800만 원)보다 100만 원 이상 낮았다. 인천 역시 분양가(1491만 원)보다 매매가(1493만 원)가 소폭 높았었다.
침체 상황이 더 심각한 지방 역시 분양가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올해 초 평균 평당 1534만 원이었던 지방의 아파트 분양가는 지난달 1798만 원까지 오르더니 이달에는 2006만 원까지 급등했다.
서울은 아직 강남권 아파트가 분양에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이미 지난달 기준 3500만 원 선을 기록했다. 분양 업계 관계자는 “하반기 평당 6000만 원을 넘을 강남구와 서초구의 재건축단지 일반분양분이 나오면 서울의 평균 분양가는 껑충 뛸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분양가가 상승하면서 6억 원 이하의 신규 아파트도 급감하고 있다. 민간분양 기준 2021년 91.3%에 육박했던 경기도의 6억 원 이하 아파트 비중은 2022년에는 80.1%, 올해 상반기에는 69.6%까지 떨어졌다. 반면 9억 원 이상인 분양 아파트 비중은 2021년 0.3%에서 2022년 1.6%, 올해는 9.3%로 급등했다.
분양가 메리트 사라졌다…인근 시세보다 높아
분양가 고공 행진이 이어지면서 인근 단지의 시세를 넘어서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신규 분양 아파트는 인근 신축에 비해 약간 낮게 책정된다. 입주 시기까지 3년 안팎이 소요되므로 그 사이 금융비용 등을 수분양자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행사나 조합이 청약 흥행을 위한 분양가 정책을 펴온 것도 분양가가 매매가보다 낮은 요인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당장 이달 분양을 앞둔 ‘광명센트럴아이파크’ 전용 84㎡의 분양가는 최대 12억 7200만 원으로 책정됐다. 불과 석 달 전인 4월에 분양된 인근의 ‘광명자이더샵포레나(84㎡ 기준 최고 10억 4550만 원)’보다 20% 이상 비싼 가격이다. 전용면적 84㎡의 최고가는 10억 4550만 원이다. 5월 분양된 ‘e편한세상 용인역 플랫폼시티’의 경우 전용면적 84㎡가 분양가 12억 1000만~12억 2000만 원에 나오며 용인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올 들어 부산·광주 등에서도 최고가 분양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주택 경기 침체 속에서도 특히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이나 지방까지 분양가가 꺾이지 않는 이유로 원가 인상, 분양가상한제 폐지 등을 꼽을 수 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2020년 집값이 급등하기 전까지는 평균적으로 신축 가격인 분양가가 구축이 포함된 매매가보다 높았지만 이후 집값이 폭등하면서 평균적으로도 매매가가 분양가보다 훨씬 높아졌다”며 "이후 공사비가 계속 오른 데다 올해부터 서울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수도권 전 지역에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지 않으면서 앞으로도 분양가는 계속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너도나도 고분양가에 차라리 서울로 몰린다…양극화 되는 청약시장
전국적으로 분양가가 오름세를 보이면서 이는 청약시장 양극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분양가 고공 행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기존 아파트의 경우 서울만 회복세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경우 그나마 분양가 메리트가 살아 있는 셈이다.
전날 1순위 청약이 진행된 ‘시흥롯데캐슬시그니처’ 84㎡는 분양가가 7억 1000만 원으로 인근 신축 ‘은계파크자이’의 최근 매매가 6억 2000만~6억 3000만 원보다 1억 원 가까이 비쌌다. 이 단지는 결국 1603가구 모집에 5118명이 지원하며 평균 3.2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지만 6배수 이상의 신청자를 모으지 못해서 이날 2순위 청약이 진행 중이다. 반면 서울 동대문구의 ‘청량리롯데캐슬하이루체’ 1순위 청약은 88가구 모집에 2만 1322명(242.3 대 1)이 몰리며 서울에서 또다시 큰 관심을 받았다. 이 단지의 분양가는 59㎡ 기준 8억 3000만 원 수준으로, 인근 구축의 호가가 7억 원 이상인 점을 고려하면 분양가가 상당히 합리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기존에도 분양가가 매매가보다 높았던 지방의 경우 미분양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부산은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분양가가 매매가보다 평당 25만 원 비쌌지만 올해는 559만 원으로 크게 확대됐다. 울산은 지난해 769만 원에서 올해 1302만 원으로 차이가 상당히 커졌다. 이 외에도 경남·경북·전남·충남·충북 등에서 분양가가 매매가 대비 크게 상승했다. 전날 울산에서 1순위 청약을 진행한 ‘유보라신천매곡’은 348가구 모집에 14명(0.04 대 1)이, 광주 ‘광천동PH543’은 99가구에 단 2가구(0.02 대 1)만 지원하기도 했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그나마 서울과 인접한 경기 지역은 분양가가 높더라도 앞으로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미분양까지는 피하고 있지만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은 차라리 신축 ‘급매’를 잡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며 “지방 같은 경우는 미분양이 계속되고 있어도 공사비 자체에 드는 비용이 있어 분양가를 쉽사리 내리기 힘들기 때문에 인근 집값이 올라줘야 미분양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