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인간만 없으면 직장 생활 할 만할 텐데”라는 생각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것 같다. 자기 마음대로 모든 것을 휘두르려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을 괴롭혀서 자기의 업적을 세우려고 하고 그럴 듯한 논리로 가장하지만 억지일 뿐이다. 그들은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하다. 수시로 말을 바꾸고 사실이 아닌 말을 하면서도 자기를 합리화한다. 남을 공격하고 조종하는 것이 에너지의 원천인 것처럼 지치지도 않고 문제를 만든다.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직장에 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어느 조직에 가도 그런 사람들은 존재할 것이다. 문제는 조직에서 그에 대한 조정 또는 감독의 의지나 능력이 없다는 데 있다.
필자도 직장에서 이런 일로 고통받은 적이 있다. 잠을 못 자서 건강이 상했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는 환자처럼 깜짝깜짝 놀라고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그런 모습을 보고 주위 사람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라고 조언했고 더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공계 동료 하나가 뉴턴의 운동 3법칙 중 마지막의 작용·반작용 이야기를 했다. 물체에 힘이 가해지면 반드시 반대 방향으로 정확하게 같은 힘이 작용하게 된다. 그런데 이 우주에서 힘은 저절로 발생하거나 그냥 소멸할 수 없다는 대원칙 하에 있기 때문에 반작용 또한 그냥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물체가 외력에 대해 자신을 유지하고 있는 힘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 동료는 개인적인 해석을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거칠고 폭력적인 강한 마음 앞에서 섬세한 마음이 강해지는 것은 석탄이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보다 어려울 것이다. 다만 섬세한 마음이 할 수 있는 일은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을 온전히 유지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마음에도 작용·반작용의 법칙과 같은 원리가 적용돼 힘을 가한 마음에 똑같이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은 발명가이자 사업가였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수백 개의 특허를 가지고 군사 용품 제작 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무기 거래상이었다. 그의 형 루드비그 노벨이 사망했을 때 프랑스의 한 신문사에서 잘못 알고 알프레드 노벨의 부고 기사를 냈다. 그 기사의 제목은 ‘죽음의 상인이 죽었다’였다.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은 알프레드 노벨은 전 재산을 돌려서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상을 주는 노벨상을 만들게 됐다.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 것인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를 미리 보게 된 노벨은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게 됐다. 힘의 원리는 조직에서도 작동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물리적인 법칙을 항상 따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더 큰 힘으로 서로를 공격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공감하는 존재다. 격려하는 말도, 무시하라는 말도, 뉴턴의 법칙도 나에게는 공감을 주는 표현이었다. 어느 때보다 더 개인주의적인 시대지만 전 세계는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사회를 창조한다. 뉴턴의 힘의 법칙을 강화할 수도 있고 포용적이고 온정이 있는 공동체를 만들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