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흑해곡물협정을 파기한 후 연일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항인 오데사를 공격하며 불안감이 높아지자 유럽연합(EU)이 우크라이나산 곡물 전량을 회원국 육로로 우회 수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흑해 곡물협정 파기로 국제 곡물가격이 최대 15%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놨다.
AP통신은 EU 회원국 농업장관들이 25일(현지 시간) 회의를 열어 육로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가능성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야누시 보이치에호프스키 EU 농업담당 집행위원은 회의 후 기자회견을 통해 “우크라이나 수출 물량 거의 전부를 ‘연대 회랑’을 통해 수출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연대 회랑은 전쟁이 발발한 직후 우크라이나산 곡물 일부를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마주한 EU 회원국 육로를 거쳐 발트해 항구로 수출할 수 있도록 한 우회로를 말한다. 보이치에호프스키 집행위원은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파기 직전까지 우크라이나 전체 수출 물량의 60%가 연대 회랑을 통해 수출됐으며, 나머지 40%만 기존처럼 흑해로 수출됐다고 전했다.
EU 측은 이를 실행할 경우 발생하는 추가적인 운송비 지원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다만 폴란드·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국가들을 설득하는 게 문제다. 이들 국가 농업장관들은 이날 회의에서 오는 9월 15일 만료되는 5개국으로의 '직접 수입 금지' 조처를 연말까지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독일도 운송비 지원은 반대하고 있다. AP통신은 “우크라이나산 곡물이 유럽 육로로 조달되면서 인근 동유럽 국가 농부들이 값싼 곡물의 물량공세와 경쟁해야 하는 문제가 우크라이나 지원을 둘러싼 EU의 단합을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피에르-올리비에르 고린차스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흑해 곡물협정의 파기로 “곡물 가격이 10~15% 오르는 게 합리적 추정치”라고 밝혔다. 그는 “협정이 우크라이나로부터 전 세계에 곡물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흑해 곡물협정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지난해 7월 22일 튀르키예와 유엔의 중재로 전쟁 중에도 흑해를 통해 곡물과 비료를 수출할 수 있도록 맺은 협정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네 번째 기한 연장을 앞두고 지난 17일 협정 파기를 선언했다. 이후 러시아군이 오데사 항구를 공습하면서 24일 하루 동안 9월 인도분 소맥 선물가격이 8.6%, 12월 인도분 옥수수 선물가격이 6% 상승하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흑해 곡물협정은 세계 식량 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우크라이나가 이 협정을 통해 해상 경로로 수출한 곡물 물량은 33메트릭톤(MT)에 달한다고 전했다. IMF는 협정이 파기될 경우 우크라이나산 곡물에 수입을 의존하는 북아프리카, 중동, 남아시아 등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