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유일한 길은 ‘안전보건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근로자들의 역할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장 사고 위험을 잘 아는 근로자의 의견을 사측(사업주)이 받아들여야 안전한 일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노사가 사고 예방을 위해 협력하는 체계와 기반은 너무 부족한 상황이다. 중소기업의 상황은 더 나쁘다.
30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노동조합 조직률은 14.2%다. 1995년부터 10~14%대에 갇혀 있다. 노조는 근로자의 대표 창구다. 하지만 그마저도 노조는 대부분 대기업과 공공 부문에 쏠려 있어 중소기업은 사실상 노조의 불모지다. 근로자 100명 미만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1.8%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은 근로자가 사측에 사고 위험을 미리 알리기 쉽지 않고 알리더라도 작업 환경을 개선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중소기업이 중대재해법을 어길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산업 안전 관계 법령 위반 수사는 근로자의 현장 진술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난제는 그나마 노조가 있더라도 노조 역할을 볼 때 안전한 사업장 문화를 담보하기 쉽지 않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올해 5월 ‘월간 노동리뷰’에서 노조 사업장 200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중점 의제 1순위로 ‘임금’을 답한 곳이 37.5%로 가장 많았다. 2위는 근로시간으로 9.2%다. 산업 안전은 6위에 그쳤다. 노조 집행부 평균 인원 8명 중 산업 안전 인력도 2명이 전부였고 자체 예산 중 산업 안전 활동 예산도 9%대에 그쳤다. 보고서는 “노조 의제는 여전히 임금과 노동시간, 기업 복지가 중점이고 산재 예방에 대한 관심도가 낮다”며 “노사 관계 내에서 산업 안전은 절대적(독립적) 영역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리 사회 전체가 산업 안전에 무감각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올해 3월 사회적 합의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노사정 합의를 이뤘다. 합의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15개월. 그나마도 선언적 합의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대 쟁점인 중대재해법은 논의 주제로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 정부 들어 노정 갈등이 심한 점도 장기적으로 산업 안전 문화 확산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