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 D램으로 각광받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D램 회사들이 신제품 연구개발(R&D)과 라인 증설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 회사 엔비디아의 선택을 받은 SK하이닉스, 생산성과 안정성이 장점인 삼성전자, 신제품 출시로 양강을 바짝 추격하는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 간 치열한 기술 경쟁이 예고된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자체 D램 평균거래가격(ASP)은 지난 2분기 바닥을 찍고 반등하기 시작했다. 반전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HBM이다. SK하이닉스는 4월 D램을 12단으로 쌓은 HBM3 제품 개발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SK하이닉스의 HBM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회사는 미국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설계 업체인 엔비디아다. 엔비디아가 AI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제시한 최첨단 HBM 조건을 유일하게 만족하면서 판매량이 날개 돋친 듯 늘어난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와의 끈끈한 협력을 기반으로 HBM 시장에서 50% 이상 점유율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용 D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난 2분기 매출 가운데 20% 이상이 HBM과 그래픽 D램에서 났을 정도다. SK하이닉스는 연내 차세대 제품인 HBM3E를 출시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내년에는 상반기 공급량 확대를 위해 실리콘관통전극(TSV) 공정 확보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HBM은 수직으로 쌓은 여러 개의 D램 꾸러미에 데이터가 이동할 수 있는 수천 개 통로를 뚫은 차세대 D램 제품이다. 기존 D램에 비해 GPU·중앙처리장치(CPU) 같은 프로세서 바로 옆에 붙어 연산을 보조할 수 있어서 정보 처리 속도가 생명인 AI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보기술(IT) 업계에서 내년 HBM 출하 용량이 올해 두 배인 50억 Gb(기가비트) 수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체 D램 시장 1위인 삼성전자도 HBM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연내 기존 비전도성필름(NCF) 공법을 업그레이드한 HBM3 제품을 출시하면서 이 시장에서 역전을 노린다. 삼성전자는 천안캠퍼스에서 HBM 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이 라인에 5000억~1억 원 규모의 생산 설비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 업계는 삼성전자 HBM이 공정 노하우를 토대로 다양한 장점을 갖고 있다고 평가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HBM2 등 범용 제품 영역에서는 삼성전자의 HBM 제품을 택하는 고객사들이 훨씬 많다”며 “생산성과 기술의 정교함은 경쟁사를 앞서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50%), 삼성전자(40%)에 이어 약 10% 점유율을 확보한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도 최근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며 추격에 시동을 걸었다. 마이크론은 8단으로 쌓은 HBM3 2세대 제품을 발표했다. 대역폭이 전작 대비 50% 향상된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