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국의 연해 중심 도시와 동북 지역의 공업 도시를 두루 방문했다. 과거 떠들썩했던 시내 중심가 식당은 일찍 문을 닫았고 도시의 활력도 예전 같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중국의 지인들은 중국 경제 낙관론을 더는 말하지 않았고 20%가 넘는 실업률에 노출된 청년들은 ‘10위안으로 장보기’ 등 자조 섞인 동영상을 만들어 유포했다.
이는 최근 중국 정부가 발표한 통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2분기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7% 수준에 달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치와 달리 6.3%에 그쳤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는 하반기에도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할 것으로 보고 연초에 제시한 5% 후반 또는 6% 수준의 성장률 전망치를 속속 5% 초반으로 낮췄다.
미중 관계는 일단 대화의 모멘텀을 찾았으나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질식(choke) 포인트를 찾는 작업은 여전하다. 중국 내부 문제는 더 심각하다. 토지 판매 수입의 급감, 막대한 코로나19 비용을 짊어졌던 지방정부의 채무 위기, 부동산 거품, 수출입 감소, 실업의 폭증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 등이 곳곳에 만연해 있다. 일부에서는 인구 감소와 성장 둔화가 구조화되면서 앞으로 중국이 정점을 찍고 내림세를 탈 것이라는 이른바 ‘피크 차이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이 시진핑 체제의 안정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자 중국 정부는 ‘극한 사고’를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시 주석은 7월 24일 당 중앙정치국 회의를 주재하면서 현 경제 상황을 점검하고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회의 보고서에는 ‘리스크’가 7번이나 강조될 정도로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리창 국무원 총리는 한때 기형적 수익을 올린다고 비판한 빅테크 플랫폼 기업 좌담회에 참석해 투자를 독려하고 대외 개방과 외자 유치를 위한 정부 차원의 설명회도 빈번하게 열었다.
그러나 정책 수단은 제한돼 있다. 재정 확대, 금리 인하, 부동산 규제 완화 등 대형 부양책은 정치적 부담이 크다. 특별 국채를 발행하고 싶어도 이것이 위안화 약세를 가져오고 더욱이 자본 유출과 부채 증가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중앙정부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디폴트에 직면한 지방정부 부채부터 챙기고 있다. 2014년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빚을 떠안지 않겠다고 선언했음에도 구이저우성 등에서 채무 상환을 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히자 이번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이 원칙을 풀었다. 하지만 이런 미봉책만으로는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는 ‘반간첩법’과 같은 체제의 경직성을 해소하고 시장의 불확실성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중국 경제의 위기는 대(對)중국 무역 의존도가 24%에 달하는 우리 경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그동안 한국은 중국 특수에 기대어 구조 조정을 게을리하면서 무역 다변화에 눈을 돌리지 못했다.
한중 관계가 개선되고 코로나19 이후 중국 시장이 다시 열리면 대중 수출도 회복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반도체 등 일부 산업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중 간 기술 격차가 좁혀졌고, 그 결과 대중 수출은 줄고 부품과 소재 등의 대중 수입은 늘면서 무역 적자가 만성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안보도 미국, 경제도 미국이라는 안미경미(安美經美)론이 등장했다. 하지만 중국을 떠난다고 해서 미국 시장이 저절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뛰어난 경쟁력이 없다면 다른 나라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미국과 유럽의 글로벌 기업들이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 남아 있고 일본 기업도 맞춤형 ‘인사이드 차이나’ 전략을 선택하고 있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IMF는 25일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8%에서 3.0%로 상향 조정했으나 한국만 1.4%로 낮춰 발표했다. 우리 경제의 위험신호는 중국발 수출 부진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중국을 단일 시장으로 보지 말고 지역별로 잘게 쪼개 접근해야 한다. 중국이 여전히 세계 최대의 전기차 시장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반사체가 아닌 발광체가 돼야만 중국의 위기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