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묻지마 '흉기 난동' 불안감 커지자…의료계 "중증 정신질환 국가책임제 마련 시급"

신경정신의학회, 2017년 제정된 정신건강복지법 근본 문제로 지적

자해·타해 사고 발생 전에는 치료 어려운 구조…법·제도 개선 필요

흉기 난동과 살인 예고 온라인 게시물로 국민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6일 오후 서울 강남역 지하쇼핑센터에서 경찰특공대원들이 순찰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4일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하며 인파가 몰리는 지하철역, 백화점 등 전국 247개 장소에 경찰관 1만2천여 명을 배치키로 했다. 서울 강남역과 부산 서면역, 성남 서현역·판교역, 수원역 등 인터넷에 게시된 '살인 예고글'에서 범행장소로 지목되거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11곳에는 전술 장갑차를 투입했다. 연합뉴스흉기 난동과 살인 예고 온라인 게시물로 국민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6일 오후 서울 강남역 지하쇼핑센터에서 경찰특공대원들이 순찰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4일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하며 인파가 몰리는 지하철역, 백화점 등 전국 247개 장소에 경찰관 1만2천여 명을 배치키로 했다. 서울 강남역과 부산 서면역, 성남 서현역·판교역, 수원역 등 인터넷에 게시된 '살인 예고글'에서 범행장소로 지목되거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11곳에는 전술 장갑차를 투입했다. 연합뉴스




분당 서현역 인근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을 계기로 중증 정신질환의 치료와 회복을 위한 국가 차원의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에 다시 힘이 실리고 있다. 중증 정신질환 환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조장하지 않고, 균형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6일 성명을 통해 "서현역 사고와 정신질환 간 연관성이 파악될 때까지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으나, 사건 발생 초기 '조현성 인격장애'라는 피의자의 정신과 진단명과 함께 3년간 치료를 중단해 왔으며 피해망상이 (범행의) 원인으로 발표됐다"며 "이러한 비극의 예방과 사후관리를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현행법과 제도로는 중증 정신질환을 앓는 국민의 치료와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게 학회의 주장이다. 학회는 "가족이 전적으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현행 시스템은 국민 누구도 구할 수 없다”며 “국가가 책임지는 ‘중증 정신질환 국가책임제’의 도입과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제도 폐지를 적극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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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는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 시스템이 악화된 원인 중 하나로 2016년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을 지목한다. 2016년 헌법재판소가 본인 동의 없는 정신병원 강제 입원을 위헌으로 판결한 것을 계기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이 제정됐고, 2017년 시행되며 강제 입원 절차가 까다로워졌다는 것이다. 해당 법안은 정신질환자를 강제 입원시키기 위해서는 2명 이상의 보호자 신청, 서로 다른 병원에 소속된 2명 이상의 일치된 소견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담고 있다. 가족인 보호의무자가 1차 책임자다.

학회는 "정신질환자들의 인권을 강화하겠다는 개정 법률의 취지에는 공감하나 자해 또는 타해 위험이 높아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이송이 이뤄지지 못하는 구조"라며 "충분한 준비 없이 시행될 경우 적절한 치료가 어려울 뿐 아니라 사고가 증가하고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확대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법률 개정 당시에도 이 같은 우려를 표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학회에 따르면 의료선진국인 미국, 유럽은 물론 대만에서도 자·타해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가 발견되면 경찰과 소방에 의료기관으로의 이송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신고가 접수되면 지자체가 전문가를 공무원과 함께 집으로 보내는 것을 의무화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를 이송할 수 없다보니, 경찰이나 정신건강복지센터가 할 수 있는 일은 환자를 설득하는 것밖에 없다.중증 정신질환자들의 치료를 담당할 상급종합병원의 정신과 병상에 대한 의료수가가 지나치게 낮은 데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국내 정신병원 병상 수가 줄어든 탓에 치료 환경이 더욱 열악해졌다는 지적이다. 학회에 따르면 국내 정신병원 병상은 2017년 6만7000병상에서 2023년 5만3000병상으로 꼬꾸라졌다.

정부는 연이은 흉기난동 사고가 벌어진 데 따른 국민들의 불안을 최소화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정신질환 관련 전반적인 제도 개선을 고민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상태다. 보건복지부와 법무부 등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가 구성돼 정신질환자 입원제도, 외래치료 지원 등 치료 실효성을 제고할 만한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학회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법무부와 보건복지부가 테스크포스를 구성해 제도 변화를 추진하기로 한 결정을 환영한다. 폭력, 난동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퍼지고 관심이 집중되면서 모방범죄가 확산할 수 있으므로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며 "정신질환 조기 발견과 치료를 위해 이송제도를 포함한 법과 제도의 개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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