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을 담보신탁하면서 수익자를 타인으로 지정했다면 그 부동산은 맡긴 사람(위탁자)의 재산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신용보증기금이 A씨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에 돌려보냈다고 16일 밝혔다.
A씨는 2004년 형 B씨 명의로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를 3억원에 매수했다. 부동산 대금을 대부분 A씨가 지불해 사실상 그가 소유한 아파트였지만 법적인 소유권은 B씨에게 있었다. B씨는 2008년 이 아파트를 담보신탁하면서 수익권자를 A씨로 지정했다. 신탁계약에는 계약이 해지될 때 아파트 소유권을 A씨에게 이전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A씨는 2016년 B씨로부터 아파트를 4억5000만원에 매수했다. 이에 따라 법적인 소유권도 A씨에게 넘어갔다. 신용보증기금은 채무자인 B씨가 빚은 갚지 않으면서 자신의 재산을 줄이는 사해행위를 함으로써 기금의 채권 회수가 어려워지는 손해가 발생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B씨에 대해 2억원의 채권을 가지고 있던 신용보증기금은 매매를 취소하고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1, 2심은 매매계약의 일부를 취소하고 A씨가 신용보증기금에 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문제의 아파트를 강제집행이 가능한 B씨의 책임재산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부동산을 신탁하면 소유권 외에 수익권이 별도의 권리로 쪼개지는데 신탁계약 당시 수익권자가 A씨로 지정됐기 때문에 부동산에 대한 수익권 역시 B씨의 재산으로 볼 수 없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매매계약 당시나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진 시점을 전후해 B씨의 재산 상태가 변동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B씨가 A씨와 매매계약을 체결한 행위는 사해행위라고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채무자가 재산을 신탁한 경우 수익자가 위탁자가 아닌 타인으로 지정됐다면 신탁계약상 수익권이 타인에게 귀속되므로 위탁자의 책임재산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최초로 판시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