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 만에 한반도를 통과한 태풍 카눈이 강원 동해안에 엄청난 양의 비를 퍼부었던 지난 10일 강릉의 한 호텔에서 이틀을 묵었던 한 관광객부부가 여행 계획을 바꿔 호텔의 응급 복구를 도왔다.
강명석·지오반나(이탈리아) 부부는 호텔 측이 '폭우가 쏟아지니 빨리 나가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침수된 호텔을 보고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부부는 지난 5월 중순 국내에 들어와 피서도 즐기고 바다도 볼 겸 강릉을 찾았다가 태풍을 만난 것이다.
오전 10시께부터 조금씩 시작된 침수 상황은 곧 발목 이상으로 빠르게 물이 차올랐고, 물이 역류하면서 급속히 불어나 양수기로 물을 퍼내도 좀처럼 물이 줄어들지 않는 상황이 계속됐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 붓는 빗줄기가 계속됐고 이로 인해 호텔 안은 물이 차올랐다. 부부는 물을 빼내느라 점심도 거른 채 호텔 측이 제공한 빵과 컵라면으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했다. 그리고 저녁까지 삽으로 흙을 걷어내고 양동이로 물을 퍼냈다.
부부가 발길을 돌리지 않고 머물며 봉사하게 된 데는 이탈리아 출신 아내의 따뜻한 마음씨가 매우 컸다.
남편 강씨는 16일 "아내가 상황을 보더니 '긴급한 상황 같으니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며 "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시작한 게 비가 계속 퍼부으면서 저녁때까지 복구 작업을 도왔다"고 말했다.
부부의 따뜻한 도움의 손길은 침수됐던 호텔이 정상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됐고 이런 사실은 뒤늦게 알려지게 됐다.
10월 이탈리아로 출국한다는 부부는 "태풍으로 많은 분이 피해를 겪고 많은 분이 도움을 준 것으로 안다"며 "우리는 아주 작은 도움이어서 굳이 알리고 싶지 않다"고 몇차례 고사하다 거듭된 요청에 작은 소리로 이름을 밝혔다.
호텔이 위치한 곳은 강릉시 경포 진안상가 일대로 상습 침수지역이다. 이날 허리춤까지 올 정도로 물이 들이 차 주변 상가와 숙박업소 등이 대부분 물에 잠겼다.
호텔 측은 이 부부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하룻밤 더 묵고 갈 것을 권했고 부부는 물이 다 빠지고 어느 정도 정상을 되찾은 다음 날 강릉을 떠났다.
호텔 주인 박주국(59)씨는 "많은 비가 내려 호텔 일원의 침수가 우려돼 부부에게 빨리 가라고 권했는데도 안 가고 저녁때까지 함께 물을 퍼주고 삽질까지 해주며 도움을 줬다"며 "그 고마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