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 가치가 올해 최저치를 연일 경신한 데 이어 지난해 정부와 일본은행(BOJ)의 시장 개입을 촉발했던 수준 밑으로 떨어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미일 간 금리차가 더 커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엔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이에 일본 외환 당국의 시장 개입 가능성이 제기되자 증시는 하락 압박을 받는 모습이다.
17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은 장중 146.56엔으로 올해 최고치(가치 최저)를 또다시 갈아치웠다. 이는 지난해 11월 이후 약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엔·달러 환율은 전날에도 장중에 이미 146엔 선을 돌파해 일본 정부와 BOJ가 24년 만에 시장 개입을 결정한 지난해 9월 22일(장중 145.90엔) 수준을 넘어섰다.
BOJ가 통화완화 기조를 고수하는 반면 연준은 아직 금리 인상을 종료하지 않았다는 관측이 엔저 흐름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날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15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한 반면 일본 장기국채금리는 0.6% 수준을 유지하며 금리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BOJ는 7월 통화정책회의에서 장기금리 상한을 높였지만 마이너스 기준금리 등 정책은 물가 상승률이 2% 수준에 안정적으로 도달할 때까지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BOJ의 2024~2025년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1%대로 목표치를 밑돈다. 금리 인상 시 일본 정부가 감당해야 할 막대한 이자비용 역시 통화정책 전환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재무성에 따르면 일본의 정부부채는 1026조 엔(약 9351조 원) 이상으로 장기금리가 1%포인트 상승할 경우 이자비용은 연간 3조 6000억 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일본 경제가 엔저 효과에 기댄 수출 호조로 성장세를 이어간 한편 내수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는 것도 부담이다.
한편 엔저 현상이 심화하자 시장은 외환 당국이 개입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닛케이225지수는 이날 0.44% 하락한 3만 1626.00으로 6월 2일(3만 1524.22) 이후 약 2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하는 등 엔저 환경에서도 최근 약세를 지속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증시 부진과 중국 경제 문제와 더불어 BOJ의 시장 개입이 일본 투자자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고 전했다.
엔화 약세로 일본 휘발유 가격은 가파르게 치솟으며 가계 부담을 키우고 있다.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전날 보통휘발유의 ℓ당 전국 평균 가격은 전주 대비 1.6엔 상승한 181.9엔을 기록했다. 이는 역대 최고인 2008년 8월(185.1엔)에 육박한다. 나가고·오키나와·야마가타 등 일부 지방에서는 이미 종전 최고치를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