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자국 산업을 고도화하면서 한동안 ‘중국 특수’를 누렸던 우리 수출 경쟁력은 구조적인 위기에 놓였다. 대중 수출에서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간재 무역에서 오히려 적자를 우려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반도체와 중국에 치중된 수출 구조를 개선하고 근본적인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대중 중간재 무역흑자 규모는 2018년 636억 달러에서 매년 줄어 지난해에는 259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올해는 적자로 돌아섰다. 우리 수출의 강점이었던 중간재 품목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반도체라는 단일 품목에 국한되지 않는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반도체 부문을 제외한 2021년 대중 수출은 1116억 달러, 대중 수입은 1143억 달러로 이미 27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에도 반도체를 제외한 대중 무역적자 규모는 97억 달러에 달했다.
대중 수출액에서 89%를 차지하는 ‘중화학·전자·기계’의 전체 세부 품목에서 부진한 수출 실적이 나타났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 5월 반도체를 포함한 전기·전자제품의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29% 줄었다. 이러한 감소세는 철강(-23%), 화공품(-20%), 기계류 및 정밀기기(-12%)에서도 동일했다.
우리 중간재의 수출 경쟁력은 대만,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에도 밀리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특히 중국의 수입이 꾸준히 늘고 있는 컴퓨터 및 주변 기기, 통신장비, 전자부품 등 정보통신기술(ICT) 제품군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20.5%에서 2021년 17.9%까지 줄어들어 주요 국가 중 점유율 하락 폭이 가장 컸다.
같은 기간 대만과 아세안의 수입 점유율은 각각 5.6%포인트, 1.9%포인트 상승하면서 우리나라를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만은 비메모리반도체와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 주력 품목의 경쟁력을 앞세워 중국 고위 기술 중간재 수입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지속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중국의 주요 무역적자국에서 흑자국으로 돌아선 것도 이러한 상황과 관련이 깊다. 우리나라는 1998년부터 2018년까지 20년간 중국의 2위 무역적자국이었으나 2019~2021년 3위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6위로 추락했고 올해는 10위 밖으로 밀려났다. 대중 무역적자는 지난해 10월부터 10개월째 계속되고 있고 이달 1~10일에도 5억 85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수년 전부터 중간재에 치중해 있던 대중 수출 구조를 고부가 소비재 등으로 다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지만 현실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나마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의 총수입 중 소비재 비중은 6.2%에서 11.2%로 2배 가까이 뛴 상태다. 전보희 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 ‘메이드 위드 차이나(Made with China)’에서 ‘메이드 포 차이나(Made for China)’로 대중 수출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며 “중국의 소비재 수입시장이 크게 확대되고 있는 만큼 수입 대체가 어려운 제품과 기술, 브랜드 경쟁력을 갖춘 고급 소비재를 개발해 중국 내수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중국의 현지 인프라 투자가 활발한 분야에 특화한 수출시장 개척도 필요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국 정부가 탄소 중립 및 신사회간접자본(신SOC)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수소·모빌리티·디지털 등은 우리 기술력을 살릴 수 있는 유망 수출 분야로 꼽힌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중국이 경제구조를 바꾸고 있다지만 개혁을 위해 우리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도 있다”면서 “그에 따른 새로운 무역 흐름을 잡을 때 자연스럽게 수출 다변화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악화하는 한중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조언도 내놓는다. 미국이 첨단 기술 분야를 압박하면서 중국 입장에서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기술 강국에 대한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미국도 글로벌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 경제의 경착륙이 심화되면 성장률에 타격이 불가피한 만큼 안정적인 중국 관리에 관심을 둬야 하는 입장이다. 우리로서는 이런 점을 지렛대로 활용해 교역에서 유리한 국면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전직 국책연구원장은 “중국 경제의 불안감이 커질수록 대중 교역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 경제의 타격도 적지 않겠지만 역설적으로 공급망 재구축 등과 맞물려 경제와 안보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힌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기술 강국으로서 한국의 위상이 제고될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 다변화로 중국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한편 한중 관계를 상호 이익을 주고받는 협력 동반자 관계로 리셋하는 차원에서 무역구조 재편에 공을 들여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