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마약류 범죄 척결에 칼을 빼들었지만 향정신성의약품 같은 의료용으로 제한된 마약류의 오남용이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강남의 ‘롤스로이스 사건’ 등을 계기로 향정신성의약품 취급자와 환자들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올해 1~5월 구속된 국내 마약류사범 중 향정신성의약품 관련 구속 피의자는 1157명으로 작년 동기 대비 49.9% 급증했다. 지난 5월 한 달만 보면, 향정신성의약품 관련 범죄로 구속된 인원은 총 414명으로 작년 동기 대비 103.9%나 늘었다.
향정신성의약품은 의료용으로 사용이 금지된 LSD, 엑스터시 등의 환각제와 암페타민류(필로폰 등)의 각성제, 그리고 제한적으로 의료용으로 허용되는 케타민이 포함된 마취제 등이다.
이 중 마취제의 한 종류인 케타민의 경우 2023년 1~5월에만 2만 5231g이 경찰에 압수됐는데, 이는 작년 동기 대비 166%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의료용으로 처방되지 않지만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는 LSD는 약 963g 압수돼 7044%나 폭증했다.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에서 롤스로이스 차량을 운전하다 행인을 친 피의자 신모(28) 씨에게도 케타민, 메디졸람 등 7종의 향정신성의약품 양성 반응이 나왔다. 피의자 신 씨는 사건 발생 당일에도 강남구의 한 병원에서 미다졸람, 디아제팜 등 2종의 약물을 투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 씨는 단순히 의료 목적의 투약이었다고 주장하지만 피해자 측 변호인은 신 씨가 다니던 병원 의사들이 마약류 처방과 투약과 관련해 허위 기재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신 씨가 약물을 처방 받은 3곳의 병원을 고발했다. 이에 경찰은 지난 16일 해당 병원 3곳을 압수수색해 신 씨가 의료 목적으로 마약류를 투약한 것이 맞는지 살펴보고 있다.
이처럼 향정신성의약품 등 의료용 마약류의 오남용 뿐 아니라 투약 후 범죄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5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마약류 처방에 대한 규제 방안이 추가로 마련됐다. 개정안은 의사가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할 때 환자의 마약류 투약내역을 확인하지 않을 경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처벌 근거가 담겼다. 또 식약처는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방지를 위해 수면제 등의 처방을 30일 이상 하지 못하게 하는 기준을 도입했다.
문제는 이러한 움직임에도 약물 오남용과 투약 후 범죄 예방에 한계가 있는 점이다. 일부 병원들의 처방전 허위 기재하거나 약물 투약자들이 지인의 개인정보로 여러 곳의 병원에서 약물 처방을 받는 등 편법에 대한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경수 한국마약범죄학회장은 “환자의 약물 투약내역 확인 의무가 법으로 마련됐지만 의사들이 이를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처방전 허위기재와 같은 범죄행위에 대한 철저한 단속도 필요한데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처방 후 관리·감독의 강화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됐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약물을 처방하는 의사나 이용하는 환자에게도 책임이 부여돼야 하지만, 복지부 등 제3자가 대량 투약자에 대해 관리·감독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