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때 급증했던 연구개발(R&D) 예산이 ‘카르텔’ 중 하나로 지목돼 구조 조정의 수술대에 올랐다. 특히 정부출연연구원·대학·기업에 지원하는 내년 R&D 예산이 올해(31조 778억 원)보다 4조 원가량 깎여 27조 원 규모로 감소할 전망이다. 정부 R&D 예산이 감소하는 것은 1991년 이후 33년 만이다. ★ 관련 기사 3면
하지만 정부는 첨단바이오·양자 등 12대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투자는 6.3% 늘리고 선도 연구 촉진을 위해 국제 공동연구 비중을 약 1.6%에서 무려 6.6%까지 늘리기로 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글로벌 기술 패권 시대’에 과학기술인의 사기를 꺾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특히 기초연구 예산과 출연연 연구 예산이 내년에 각 2000억 원, 3000억 원 깎이는 등 유탄을 맞았다. 벤처·스타트업 R&D 예산도 마찬가지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22일 제4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에 이어 이 같은 R&D 구조 조정·혁신 방안을 밝혔다.
우선 과기정통부가 관장하는 주요 R&D 예산을 올해보다 약 3조 4000억 원 감축(총 21조 5000억 원)하기로 했다. 1200개의 R&D 사업 중 108개를 통폐합한 결과다. 예산 감소 폭이 무려 13.9%에 달한다. 기획재정부가 국방과학연구소(ADD)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등에 투자하는 일반 R&D 예산도 올해(약 6조 2000억 원)보다 10% 이상 감축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6월 말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R&D’를 직격하며 효율성 강화와 국제 공동연구 확대를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윤 대통령과 당정은 전임 문재인 정부 때 R&D 예산이 약 10조 원 증가한 과정에서 나눠주기식 보조금 성격의 R&D 자금이 늘었다고 본다.
하지만 정부는 12대 국가전략기술에 올해보다 6.3% 늘어난 5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특히 첨단바이오·인공지능(AI)·양자·반도체·2차전지·우주·사이버보안 등 7대 분야의 투자를 늘릴 방침이다. 국제 공동 연구 예산은 올해(5075억 원)보다 3배 이상 폭증한 1조 7961억 원까지 늘리기로 했다.
이 장관은 “정부 R&D가 양적으로 세계 5위인데 R&D 시스템과 인력은 그대로”라며 “선도형 R&D로 나아가기 위한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