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만파식적] 볼커의 실수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2018년 취임 몇 달 후 새로 나온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의 회고록 ‘미스터 체어맨’을 들고 다녔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리는 볼커는 주요국 중앙은행 수장 가운데 ‘고트(GOAT·역사상 최고의 인물)’로 꼽힌다. 1979년 8월 취임한 볼커는 초고금리 정책으로 오일 쇼크 등으로 인해 급등한 물가를 잡는 데 성공했고 1990년대 미국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볼커의 통화 긴축 성공은 신자유주의 학파가 주류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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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볼커는 치명적인 정책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취임 당시 11.5%이던 기준금리를 1980년 4월 17.6%까지 올리자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에 시달리던 미국 경제는 더 악화됐다. 볼커는 재선을 앞둔 지미 카터 대통령의 압박에 밀려 기준금리를 그해 7월 9%대로 하향 조정했다. 이후 볼커는 다시 튀어 오르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1981년 21.5%까지 끌어올려야 했다. 또 1983년부터 물가가 하락했는데도 기대 인플레이션 심리를 누르기 위해 1985년에야 금리 인하 작업을 본격화할 수 있었다. 결국 한순간의 오판으로 경기 침체 기간이 길어진 것이다.

최근 미국의 고금리가 ‘뉴노멀’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커지면서 ‘볼커의 실수’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7월 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2%로 1년 전의 9%대에서 크게 낮아졌다. 하지만 볼커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 파월이 섣불리 통화 완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더구나 연준이 금리를 22년 만의 최고치로 인상했는데도 소비·고용·성장률 등 미국의 주요 경제 지표가 호조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고금리가 장기화한다면 한국 경제도 여러 난관에 처할 것이다.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 카드를 동원하기 어려워지고 외국인 자금 유출 우려에 시달릴 수 있다. 금융 불안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수출 확대와 경상수지 방어의 필요성이 더 커지는 시점이다.

최형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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