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러시아 의문사






표트르 3세는 1762년 1월 러시아 황제(차르) 자리에 올랐지만 6개월 만에 폐위됐다. 근위대의 반란으로 쫓겨난 그는 며칠 뒤 암살까지 당했다. 살인범 수사는 미궁에 빠졌지만 후대 학자들은 황후이자 뒤를 이어 즉위한 예카테리나 2세 여제 측이 저지른 사건으로 본다. 독일 출신인 여제는 표트르 1세에 이어 러시아의 영토를 확장하고 통치 체제를 근대화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정적 살해는 이처럼 러시아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나타났다. 표트르 3세의 아들 파벨 1세도 즉위 4년 만에 살해됐고 알렉산드르 2세도 수차례 위기를 넘겼지만 결국 피살됐다. 차르는 늘 암살 음모에 시달려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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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제국이 무너지고 사회주의 체제인 소련이 등장했지만 반대 세력 제거는 더욱 악랄해졌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1937~1938년 비밀경찰을 이용해 비판자들을 무자비하게 잡아들였고 반혁명 분자로 몰아 약식 재판을 거쳐 처형하거나 강제 수용소로 보냈다. 이 시기에 숙청당한 사람은 사망자 수십만 명에 강제 노역자를 포함하면 백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가권력을 기반으로 정적을 살해했다는 점이 제국 시절과 다를 뿐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시기에도 정적 살해가 수없이 일어났다.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비행기 안에서 신경제인 노비촉 공격을 받아 혼수상태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했다. 또 다른 야권 지도자는 푸틴 대통령 생일날 아파트 계단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망명한 전직 러시아 연방보안국 요원은 전 동료가 전해준 홍차를 마시고 숨졌다. 푸틴에 맞섰던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 중 일부도 살해당했다.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3일 그의 전용기 추락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한때 ‘푸틴의 칼잡이’로 불릴 만큼 푸틴에게는 충성스러운 인물이었으나 무장 반란 시도 두 달 만에 의문사를 당했다. 인도의 탐사선이 달의 남극에 착륙했다는 뉴스가 들려오는 이 시대에도 암흑가에서나 있을 법한 사건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 무자비한 권력으로 인권을 유린하는 전체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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