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K드라마, K영화, K뮤지컬…. 이제는 문화의 장르 앞에 한국을 뜻하는 ‘K’를 붙이는 일이 한국인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상 중 하나가 됐다.
‘한국다움’이 열렬히 각광받는 시대다. 문학도 이러한 흐름에 뒤처질 수는 없다. K문학의 선봉에서 세계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여러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2016년 맨 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그랬고, 2021년 영국 대거상을 받은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이 그랬다. 남다른 문학적 성취를 거둔 한국 작가들의 몫이 컸지만, 언어적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동분서주한 또 다른 이들이 있다. 번역가들이다.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의 완벽한 대치는 불가능하기에 번역에는 필연적으로 창조성이 필요하다. 이 책을 엮은 조의연 동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는 “결과물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번역가는 원작자의 그늘에 가려져 빛을 보기 쉽지 않으며 간혹 오역이라도 있으면 번역가는 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면서 “이러한 현실에도 번역가는 자기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책은 한국 문학의 번역에 나선 번역가들의 이야기를 한 데 모아 엮어낸 책이다. ‘82년생 김지영’을 번역한 제이미 장을 시작으로 김혜순의 시집 ‘한 잔의 붉은 거울’을 번역한 로렌 알빈과 배수현, 김이듬의 시집 ‘히스테리아’를 번역한 제이크 레빈 등 다양한 번역가들이 번역 현장의 이면을 진솔하게 풀어낸다.
제이미 장은 김지영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삶과 그의 삶을 연대기로 정리해 비교해 보는 등 치열한 고민을 거듭했음을 털어놓는다. 시는 함축적 성질로 인해 단어와 구두점 하나에도 뉘앙스가 달라질 수 있다. 로렌 알빈과 배수현은 김혜순의 시집을 번역하면서 수정을 거듭하며 시인의 세계를 풍부하게 담아내기까지 노력의 과정을 서술한다.
책은 인공지능의 시대, 번역의 창조성을 고민하고 ‘번역은 반역’이라는 도발적인 메시지를 제시한다. 진 미셰리는 오늘날 기계 번역이 이전에 비해 발전했다는 점을 수긍하면서도 아직 문학의 창조적인 영역에서는 인간을 따라올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아이디어, 은유, 암시, 이미지의 차원에서는 알고리즘의 기계적 학습이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중대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의 세계적인 영향력이 커지는 가운데, ‘K문학’의 미래와 방향에 대한 번역계의 고민도 이어진다. 제이크 레빈은 “(정부의)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이라는 사고의 전환이 문학을 전통적인 장르로 정의하는 대신 여타 모든 한국 문화 콘텐츠 형태와 공존하는 콘텐츠로 축소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목소리를 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형진은 “한국문학 번역에도 K팝의 탈국가성 전략을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의견을 전한다. 한국 문학의 위상은 변해가고 있지만, 한국을 넘어 우리 문학의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전한다는 기치는 변하지 않는다. 번역가들의 고심이 담긴 단어 하나에도 커다란 감동이 빚어지는 이유다. 2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