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고수해온 성장 방식은 비교적 간단하다. 대규모 투자를 통한 외형 성장과 저가 공세를 통한 시장 잠식이 그것이다. 중국 최대의 패널 업체 BOE의 전 수장 왕둥성 회장이 주장한 ‘왕의 법칙’은 이런 기조를 잘 보여준다. 왕의 법칙은 패널 가격이 3년 주기로 50% 떨어지기 때문에 기존 제품에 비해 두 배 이상 성능을 높여 가격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계의 최대 강점을 ‘가격 경쟁력’으로 꼽은 셈이다.
그러나 ‘왕의 법칙’으로 주도권을 잡은 액정표시장치(LCD)와 달리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이 승부를 보기에는 아직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중국 업체들이 저가 플렉시블 OLED를 대량 공급하며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지만 프리미엄 위주로 수요가 형성된 시장에서는 한국 업체들과의 기술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BOE가 기술 문제로 올해 아이폰15 패널 공급에 실패하며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034220)가 패널 공급을 전량 양분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BOE는 펀치홀 디스플레이에 사용자환경(UI)을 적용해 경고나 알림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 ‘다이내믹 아일랜드’ 구현에 필요한 홀 디스플레이 가공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아이폰13용 OLED 패널 수율을 높이기 위해 애플의 승인 없이 임의로 박막트랜지스터(TFT) 설계를 바꾼 것이 적발돼 공급 물량이 급감하기도 했다.
원천 기술 면에서는 특허 도용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6월 미국 텍사스주 동부지방법원에 BOE를 상대로 스마트폰 OLED 특허침해 소송을 냈다. 아이폰12 이후 사용된 모든 아이폰 제품의 OLED 디스플레이 특허 4종이 대상이다. 침해된 기술 중에는 삼성디스플레이의 핵심 특허인 ‘다이아몬드 픽셀’ 등이 포함됐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부가가치 OLED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의 기술력은 우리보다 아직은 2~3년 뒤처져 있다”며 “일부 제품은 기술력이 갖춰진다고 해도 특허 문제로 시장 진입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