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흉기난동범에 소주·치킨 사주며 설득한 경찰…테이저건 못 쏜 이유가

오윤성 교수 "유족 소송 손해배상액 10억 넘어…경찰 의지 아닌 법원 판단 문제"

양손에 흉기를 든 전직 요리사 정모 씨가 경찰과 대치 끝에 제압 당한 지난 26일 저녁 사건 현장인 서울 은평구 갈현동의 한 주택가가 통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양손에 흉기를 든 전직 요리사 정모 씨가 경찰과 대치 끝에 제압 당한 지난 26일 저녁 사건 현장인 서울 은평구 갈현동의 한 주택가가 통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6일 서울 은평구의 한 주택가에서 흉기 8개를 소지한 채 난동을 부리던 피의자 정모(37)씨에게 경찰은 테이저건을 사용하지 않고 치킨 및 소주를 제공하며 2시간 40분만에 제압했다. 피의자가 자해를 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물리력을 행사할 시 되레 돌발행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진 뒤 일각에서는 흉기난동범에 왜 물리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았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앞서 지난 4일 윤희근 경찰청장은 흉기 난동 범죄가 발생하면 현장에서 범인에 대해 총기나 테이저건 등 경찰 물리력을 적극 활용하라고 일선에 지시한 바 있다. 범행 제압을 위해 총기 등을 사용한 경찰관에게 면책규정도 적극 적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 사이에서는 아무리 물리력 사용 조건이 완화됐다 하더라도, 피의자나 가족 등으로부터 소송이 들어오면 이를 경찰 개인이 오롯이 감내해야만 하는 구조라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흉기난동범과 대치 중 테이저건을 사용했다가 유족 측으로부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받은 사례는 실제로 종종 있다. 2010년 5월 한 흉기난동범은 경찰 테이저건에 맞고 자신이 들고 있던 흉기에 왼쪽 옆구리를 찔려 숨졌다.

해당 사건을 두고 법원은 ‘사고 발생 예측이 가능한 상황에서 경찰이 무리하게 테이저건을 사용해 남편을 숨지게 했다’며 유족 측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법원이 “경찰은 테이저건 말고도 장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방식의 제압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테이저건 사용의 불가피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총기 사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997년 3월 서울 마포구에서 차량 절도 용의자가 40㎝가량의 흉기를 들고 위협하다 경찰이 쏜 실탄을 맞고 복부 관통상으로 사망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총기 사용을 사회 통념상 허용범위를 벗어난 위법행위로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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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28일 YTN 뉴스라이더에서 “경찰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유가족에 의해서 민사소송이 들어오면 손해배상액이 1~2억 원짜리가 아니고 10억 이상이 넘어가는데, 이를 본인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결국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는 이유는) 법원에서의 판단 문제다. 경찰 의지 문제하고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 교수는 “단계별로 (흉기 난동에) 대처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매뉴얼이 만들어져 있지만, 매뉴얼은 매뉴얼일 뿐 나중에 문제가 될 경우 개인이 질 수 있는 책임 문제가 아직 경찰 공무원의 뇌리에서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며 “이런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아울러 오 교수는 치안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임무 수행에 있어 인력이 적절하게 배치되지 않고 있다"며 "현장에서 뛰는 비간부급이 적다. 순경 같은 경우는 9500명이 정원인데 (근무 인원은) 절반밖에 되지 않고, 경사 및 경장 같은 경우도 상당히 적다”고 했다. 이어 “구조 자체가 머리는 크고, 다리나 허리는 약한 구조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해당 사건의 피의자 정 씨의 구속영장은 이날 기각됐다. 서울서부지법 정인재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정 씨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을 하고 “범죄의 중대성이 인정되나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정 씨는 지난 26일 오후 7시 26분께부터 오후 10시께까지 은평구 갈현동의 6층짜리 빌라 건물 1층 주차장에서 양손에 흉기를 들고 자해하겠다며 경찰을 위협한(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받고 있다.

심문을 마치고 나온 정 씨는 오열하며 “금전 문제로 범행을 저지른 게 아니라 속상해서다. 엄마가 나를 못 믿어서 무속인한테 300만 원을 갖다 줘 너무 속상해서 술을 마시고 풀려 했다”며 “그곳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소리를 질렀는데 시민이 신고했다. 경찰이 너무 많이 와서 겁에 질려 그랬다”고 말했다.

정 씨는 자신이 갖고 있던 흉기 8개에 대해 “요리사라서 어쩔 수 없이 갖고 다닌다”고 했다. 경찰은 정 씨가 소란을 피울 당시 양손에 들고 있던 흉기 2개와 가방 안에 있던 6개 등 흉기를 모두 압수했다.

경찰은 정 씨와 가족 진술로 봤을 때 돈 문제로 가족과 갈등을 겪다가 범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정확한 경위를 추궁하고 있다.


차민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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