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훅 다가온 인구 재앙

정영현 생활산업부장





2021년 여름 출간된 손원평 작가의 소설집 ‘타인의 집’에는 ‘아리아드네 정원’이라는 제목의 단편이 실려 있다. 31쪽 분량의 짧은 글이지만 작가는 미래 한국 사회를 덮친 복합 재앙을 서늘하면서도 담담한 문체로 보여준다.

소설의 주인공은 나이 들어 자립 능력을 상실한 후 요양원에서 지내는 민아 할머니다. 말이 좋아 요양원이지 실상은 사회에서 불필요해진 노인 격리 수용소에 다름없다. 민아 할머니는 요양원이 정원보다는 첨탑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요양원은 철저히 계급화돼 있다. 입소 전 삶의 성과에 따라 생활 구역이 엄격히 구분된다. 입소자 생활 관리는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기술이 담당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계에 요구나 건의사항을 전달해야 하는데 민아 할머니 입장에서는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하는 식이다. 실체가 있는 기계도 있기는 하다. 입소자 간 분쟁이 발생했을 때 해결사 역할을 하는 로봇이다. 이 모든 것은 노인 돌봄 인력이 절대 부족한 탓이다. 고령에 고독까지 더해진 채 기계에 의존해 살아가는 삶이라니.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소설은 이민 문제도 함께 짚는다. 노동력 부족에 국가가 급히 이민 문호를 열었지만 준비 없는 대책의 후폭풍은 거세다. 극복되지 못한 이질성이 세대 간, 세대 내 갈등과 증오를 증폭시킨다. 먼 미래의 일이라 치부해버리기 쉽지만 작가는 출간 당시 인터뷰에서 “현재 우리 세대가 노인이 된 미래 어느 날을 상상하고 썼다”고 했다. 불과 30~40년 후가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라는 뜻이다.



민아 할머니가 살고 있는 아리아드네 정원이 불현듯 생각난 것은 이달 22일 공개된 행정안전부의 ‘2023 행정안전통계연보’ 때문이다. 통계는 국내 1인 세대의 1000만 돌파가 눈앞이고 그 중 60대 이상이 37.2%에 달한다고 했다. 70대 이상 1인 세대의 증가율이 가장 높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단순히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는 게 아니라 고독한 초고령사회로 향하고 있다고 통계는 말한다. 소설적 상상이 빠른 속도로 우울한 현실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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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발표된 통계청의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변화’ 역시 우리 사회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통계에 따르면 10년 전에 비해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청년 비중이 56.5%에서 36.4%로 줄었고 이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비중은 38.5%에서 14.9%까지 떨어졌다. 반면 동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비중은 80.9%까지 늘었다.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응답은 53.5%까지 높아졌다. 혼인이라는 제도적 연결을 통한 가족 구성 및 확대의 필요성이 청년들 사이에서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로 초저출산 기조가 앞으로 더 심화할 것이라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절대 고독의 초저출산 초고령사회가 훅 다가왔지만 당장 주목할 만한 인구구조 변화 대응책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는 구급차의 사이렌처럼 경고음만 커질 뿐이다.

사실 민아 할머니의 고립감이나 고독감은 배부른 개인적 고민에 불과할지 모른다. 이대로 간다면 수십년 전부터 쳇바퀴만 돌고 있는 연금 문제를 비롯해 숙련·비숙련 구분 없이 심화하고 있는 노동력 부족, 지역 도시 소멸, 병력 자원 감소에 따른 안보 약화, 주력 소비층 및 소비 패턴 변화로 인한 기업 쇠락과 세수 감소, 사회 통합 실패와 부적응으로 인한 분노 범죄 증가 등 앞으로 온갖 문제가 전방위에서 동시다발로 터져나올 게 자명하다. 그나마 최근 들어 이민정책이 논의 수순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단순히 발등의 불을 끄듯이 노동력을 충원하는 선에서 그칠까 우려된다. 백년대계 차원에서 촘촘히 접근하지 않는다면 사회 통합 실패는 물론 공멸로 갈 수 있다.

민아 할머니는 쓸쓸히 이런 독백을 한다. ‘아직 어렸을 때 이런 내용의 글을 신문 기사로 봤다면 어땠을까. 설마설마하거나, 잠깐 걱정하고 일상으로 복귀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래는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고 눈 깜짝할 사이에 현재를 점령한다. 그 시점에서 돌아보는 과거는 아둔하고 순진해 보일 뿐이다.’ 우리 모두의 독백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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