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통제에 이어 요소까지 제한하면서 우리 산업계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반도체·자동차·철강 등 전 산업에서 중국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가 높은 만큼 장기화할 경우 비용 증가나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 심지어 배터리 등 첨단산업에 쓰이는 핵심 광물 기술에 대한 통제 등 중국이 추가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제기돼 산업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산업계는 “중국 경제가 휘청거리며 반도체나 석유화학·스마트폰 등의 상황이 좋지 않은데 미중 갈등이 2라운드로 접어들면서 이제는 회복할 기회마저 사라지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8일 정부에 따르면 이달 초 중국의 최대 화학 비료 업체인 중눙그룹은 수출용 요소 물량을 줄인다고 발표했다. 중눙그룹은 정부가 사실상 경영을 통제하는 국유기업으로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요소 수출을 통제한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요소를 사용하는 비료·화학·철강 업계는 연말까지 재고를 확보한 상황이라 당장에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장기화되거나 중국 정부의 공식 통제가 나올 경우 요소 가격 급등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화학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수급이 멈추면 요소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를 것”이라며 “중동 등으로 수입 노선을 돌려도 운송 시차와 가격 차이로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산업계는 요소를 시작으로 중국의 자원 무기화가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중국은 첨단산업에 쓰이는 핵심 원자재 51종 가운데 33종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이 수출통제 대상을 추가할 때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공급망에 타격이 불가피한 이유다. 차세대 반도체는 물론 태양광 패널, 전기차 구동모터 등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원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미국의 대중국 견제 조치에 대응해 중국이 추가 대응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며 “품목별 대중국 수입의존도와 공급망 조사 등을 통한 대응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자원 무기화 이어 외산 제품 금지 확대 가능성…"휴대폰·노트북 등 수요 더 위축될 듯"
정부는 사태가 악화할 경우에 대비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양국 간 공급망 협력 채널을 통해 소통을 이어갈 예정”이라며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중 갈등이 격화할 경우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중국 경제의 상황이 좋지 않으면 우리나라 수출 감소 등의 부작용이 이어지고 있는데 자칫 더 악화할 수 있다. 중국은 게르마늄·갈륨 등의 수출도 통제하고 있다. 갈륨은 차세대 전력반도체에 사용되는 중요 자원으로 중국이 전 세계 생산량의 90%가량을 차지한다. 갈륨은 태양광 패널에도 사용되는데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미국에서 직접 생산을 준비하는 한화큐셀의 경우 중국 수출제한으로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산업계는 미중 갈등이 더욱 격화해 중국이 자원의 무기화 강도를 높인다면 피해의 정도가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차세대 반도체 소자로 주목받는 실리콘카바이드(SiC)의 소재인 탄화규소의 경우 중국이 전 세계 생산량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탄화규소 수입의 75%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수입제한이 걸리면 개발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전기차 업계는 중국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희토류 자석 수출 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희토류 영구자석은 전기차 구동모터 제작에 필요한 핵심 부품이다. 만약 수급이 막힐 경우 전동화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는 국내 완성차 업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황산코발트·수산화리튬·황산망간·흑연 등 배터리 핵심 소재로까지 번진다면 상황은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체 수입 품목 중 배터리 소재의 중국산 의존률은 9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 정부는 자원 무기화를 넘어 외국산 제품 반입 금지로 세계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최근 중국 당국은 공무원을 대상으로 외국산 휴대폰 사용 금지 조치를 내렸다. 국내 제품으로의 확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휴대폰이나 노트북·태블릿PC 등이 유력 후보로 꼽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애플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중국에서 점유율 회복에 나서던 삼성전자에도 악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2013년 20%에서 2018년 1%로 내려앉은 뒤 여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