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모습이지만 노조가 임금 이외에 수많은 안건을 협상장에 가져오다 보니 교섭을 조기에 타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최근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진행하는 완성차 업계의 노무 담당자가 남긴 말이다. 노조가 장기적인 논의가 필요하거나 개별 기업이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까지 교섭 테이블에 한꺼번에 올리며 교섭이 장기화한다는 설명이다.
정년 연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완성차 업계의 올해 임단협에도 정년 연장은 주요 안건으로 등장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 노조는 단체협약을 개정해 만 60세로 설정된 정년을 만 64세까지 연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퇴직 후 국민연금 수령 시점까지 발생하는 공백을 메꿔야 한다는 논리다.
노조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은퇴 후 장기간의 소득 공백은 많은 근로자들이 공통으로 우려하는 사안이라서다. 하지만 정년 연장은 개별 기업이 임단협에서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우선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연공형 임금체계가 자리 잡은 상황에서 정년을 연장하면 회사가 부담해야 할 인건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자연스레 신입사원 채용도 어려워지고 대규모 투자에도 부담이 커진다. 결국 직무급제나 임금피크제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이 함께 논의돼야 하는데 이는 장기적 관점에서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자동차 산업의 변화를 고려하면 정년 연장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안건이다. 자동차 시장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전환되면 생산을 위해 필요한 부품 수는 50%, 고용은 30~40% 줄어든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실제로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 등은 이미 생산직 인력을 감축했다. 해고가 자유롭지 않은 국내 업계는 정년퇴직 등 자연 감소로 인력 구조를 바꾸려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대안 없이 정년만 연장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미 자동차 업계가 기록적인 실적을 거둔 여파로 임금 인상과 성과급 지급 규모를 놓고 노사 간 이견이 크다. 임단협에서는 임금, 복지와 관련한 논의에 집중하고 정년 연장이나 비정규직 문제 등은 입법이나 사회적 대화와 연계해 다루는 것이 효율적인 전략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