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집시 여성의 삶을 팜므 파탈적으로 구현해 낸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이자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이 현대적 가치와 결합해 되살아났다. 카르멘을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주체적 인간으로 해석한 시극 ‘카르멘’과 작품에 시민들이 참여하는 야외 오페라 ‘카르멘’이 관객들을 만났다.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막한 서울시극단의 연극 '카르멘'은 오페라로 유명한 작품을 원작 소설과 적절하게 섞어 고선웅 서울시극단장이 각색했다. 소설과 오페라로 친숙한 인물들을 현대의 시선으로 해석한 점이 눈길을 끈다.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고 극단장은 “카르멘은 잘못이 없다라는 것이 연출의 주안점”이라며 “돈 호세의 옳지 않은 선택과 집착을 보고 관객이 ‘왜 그랬어’라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카르멘은 극에서 “어차피 내가 갈 길, 뒷걸음질은 싫어”라고 말하며 자유로운 현대적 여성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고 연출은 “카르멘의 편이 많기를 바란다”며 “관객 분들도 사랑만 하셨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카르멘 역의 서지우는 “원작을 읽었을 때 이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 관객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며 “하지만 믿음과 변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의미로 다가가니 오히려 지금 시대에 필요한 사랑이 아닌가라고 생각해 캐릭터를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작품 속 대사들은 고풍스러운 맛과 멋을 풍긴다. 연출을 맡은 고 극단장은 “시처럼 낭송하며 얘기하면 옛스러운 맛도 나고 문학적인 느낌이 날 것이라 생각했다”며 “오히려 이런 과장되고 옛스러운 것들이 고전 연극의 본연적 가치를 담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요즘은 연극에서 대사를 자연스럽게 하지 않으면 그것이 연극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제가 배운 연극은 과장도 허구도 있고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것이고 사실주의와 자연스러움만 가지고는 무대를 못 채운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원작의 전개와 결말과는 다른 각색된 요소를 찾는 것도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다. 오페라에는 없는 카르멘의 전 남편 가르시아의 비중이 늘었고, 카르멘의 새로운 사랑 에스까미오의 비중도 늘어났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아바네라’ 등의 주요 멜로디도 적재적소에 활용됐다. 연극이지만 플라멩고 등의 볼거리도 풍부하게 담았다.
단순하지만 상징적인 투우장 모티브의 원형 무대도 연출의 주요 요소다. 고 연출은 “인물과 인물 간의 돌고 도는 힘의 관계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투우장의 이미지가 작품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연은 다음달 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다.
8~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는 ‘카르멘’의 야외 오페라가 펼쳐졌다. '카르멘'은 붉은 부채로 둘러싸인 야외 특설 무대를 통해 시각적 효과를 더했다.
통상 오페라 ‘카르멘’은 3시간 가까이 걸리는 대서사시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시민들과 함께하는 공연의 특성상 대표적인 아리아와 중창들을 선보이며 공연 시간을 70분으로 대폭 줄였다. 짧아진 만큼 카르멘 역의 메조소프라노 송윤진·백재은, 돈 호세 역의 테너 정의근·이승묵 등 성악가들은 탁월한 가창으로 밀도 있게 무대를 채웠다. 특히 자원을 받아 결성된 시민합창단 71명의 존재감도 두드러졌다. 전문 성악가의 곁에서 이들이 화합하며 선보인 합창은 축제의 분위기를 달구는 마중물이 됐다. ‘카르멘’의 무대 중간 중간에는 폴댄스·파이어 퍼포먼스 등 강렬한 퍼포먼스가 등장하며 관중의 시선을 잡아끌기도 했다.
이후에도 서울시오페라단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목표로 연내 두 개의 공연을 제작한다. 다음달 26일부터 29일까지는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오는 12월 9일에는 ‘오페라 갈라 콘서트’를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