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파, 뇌파 진단기기(뇌파계)에 이어 엑스레이 골밀도 측정기를 사용한 한의사의 진료행위가 합법이라는 사법부 판결이 나오면서 보건의료 직역 간 희비가 엇갈렸다. 한의사가 사용 가능한 현대 의료기기 사용 범위가 확장되는 추세에 의사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양한방 갈등이 한층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은 저선량 엑스레이 골밀도 측정기를 사용한 한의사가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에 관한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대한한의사협회는 성장판 검사를 위해 저선량 휴대용 엑스레이 골밀도 측정기를 사용한 한의사에 대해 올바른 판결을 내려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수원지방법원에 제출한 바 있다. 탄원서 지지서명에 참여한 한의사는 1만 5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한의사의 손을 들어주자 한의협은 "초음파, 뇌파계에 이어 엑스레이를 비롯한 다양한 원리의 현대 진단기기를 한의사가 사용하는 데 있어 또 하나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며 환영했다. 이들은 "입법부와 행정부가 양의계의 눈치를 보며 주저하는 현실에서 사법부가 합리적이고 당연한 판단을 내렸다"며 후속조치를 촉구하고 나섰다. 국민의 진료 편의성을 고려한다면 검찰이 법원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마땅하며, 만일 항고가 진행되더라도 국민의 편에서 정의롭고 합당한 판결이 나오길 기대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수원지방법원이 각 의료직역의 축적된 전문성과 경험을 고려하지 않은 판결을 했다”며 “의료인 면허제도의 흔들 뿐 아니라 국민 건강에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한의협을 향해서는 "이번 판결을 빌미삼아 면허 범위를 넘어서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시도한다면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줄 수 있는 불법적인 무면허 의료행위로 간주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총력 대응하겠다"는 경고의 메세지를 날렸다.
재판부는 이날 법정에서 무죄 선고 이유를 달리 설명하지는 않았다. 다만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한 혐의로 기소됐던 한의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앞선 판결들과 같은 취지의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작년 12월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진료에 사용해도 의료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한의사가 진단 보조 수단으로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보건위생에 위해를 발생시킨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게 판단의 이유다.
지난달에는 뇌파계 사용 후 면허정지 처분을 받은 한의사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낸 면허자격정지 처분 취소소송에서 대법원이 원고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의료계는 오는 14일 오후 2시로 예정된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관련 파기환송심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파기환송심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이 뒤집힐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의협은 지난 11일 '한의사 초음파사용 관련 파기환송심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제시한 판단 기준 자체에 문제가 있으며 무책임한 결정"이라며 "재판부가 대법원 결정을 그대로 따를 경우 추가적인 사법 대응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