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인공지능(AI) 규제 논의에 본격 착수하며 빅테크 최고경영자(CEO)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초거대 AI 등장으로 대격변이 예고되는 와중 규제 방향성에 대한 각 국가·기업간 의견이 갈리는 형편이다. 글로벌 각지에 영향을 끼칠 AI 특성을 감안할 때 세계를 아우르는 ‘표준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13일(현지 시간)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의원이 AI 규제 논의를 위해 주최한 ‘AI 인사이트 포럼’이 비공개로 열렸다. 이 자리에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MS의 빌 게이츠 창립자와 사티아 나델라,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샘 올트먼,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엔비디아의 젠슨 황 등 AI 최전선을 이끄는 기업 대표들이 참석해 화제를 모았다. 높은 관심도를 반영하듯 미 상원의원 60여명이 자리하기도 했다.
이날 회의의 목적은 입법부의 ‘AI 스터디’에 가깝다. 규제를 만들기에 앞서 AI 거두들의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취지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AI 자율규제 정책을 취해왔으나, 챗GPT 공개로 AI 기술 발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구체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는 중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선거에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거나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즉각적인 위험성’에 대한 인식을 증가시켰다”며 규제 논의 배경을 설명했다.
빅테크 CEO들도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이다. 정부가 ‘기준’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다만 각자의 입장이 미묘하게 다르다. 일론 머스크는 정부가 앞장서 ‘심판’이 돼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포럼 종료 후 취재진을 만나 “AI는 '양날의 검'으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문명에 대한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며 “사전 규제가 가능한 연방 정부 차원 AI 담당 부서가 심판 역할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머스크는 올 3월 챗GPT 개발을 반년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등 AI 대격변을 우려하고 있다.
반면 저커버그는 규제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기준점은 정부가 아닌 기업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저커버그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지만, 의회에서는 “혁신과 안전을 위해 AI와 ‘협력’해야 한다”며 “정부와 협력할 수 있는 ‘미국 기업’들이 기준을 제시하는 게 낫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미국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혼란을 줄 수 있는 딥페이크 등에 우선적인 규제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슈머 의원은 회의 종료 후 “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딥페이크 규제가) 다른 것들보다 급하다”고 언급했다.
사실 미국은 AI 기술에 끼치는 영향력을 감안할 때 규제 논의가 늦은 편이다. 유럽연합(EU)은 지난 5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AI 관련 규제 논의를 시작했다. EU는 초거대 AI를 활용한 타사 서비스에 문제가 생겨도 AI 제작사에 책임을 묻는 강력한 규제를 추진 중이다. 이에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이를 준수하려 노력하겠지만 불가능하다면 EU 내 챗GPT 운영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EU에서 탈퇴한 영국은 AI에서 파생한 각 서비스에 대한 별도 규제들을 논의하고 있고, 미국도 영국과 유사한 길을 따를 전망이다. G7 간에는 글로벌 ‘공통규제’에 대한 논의도 시작됐다. 반면 중국은 가장 엄격한 규제로 AI가 생성하는 정보까지 통제하려 들고 있다. FT는 “중국의 우선순위는 사회주의 핵심가치 고수로, 여론에 영향을 끼치는 AI를 사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도 관련 규제 논의를 시작했지만 구체적인 방향성은 제시되지 않은 상태다. 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국제정부소통포럼(IGCF)에서 “AI 가이드라인 제정에 있어 정부가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한다”며 “조만간 AI를 포함한 디지털 전반의 미래상과 원칙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