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정상화를 위해서는 스스로 법적 책임을 져야한다.”(검찰) “실체도 불분명한 사법농단과 재판거래를 기정사실화했다”(양승태 전 대법원장)
이른바 ‘사법 농단’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검찰이 징역 7년을 구형하면서 1심 재판이 사실상 종결됐다. 검찰이 기소한 지 4년 7개월 만으로 결국 일주일가량 남은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 내에 선고가 내려지지 않은 채 마무리되면서 재판 지연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게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검찰은 1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 임정택 민소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사법 농단 사건’의 결심 공판에서 양 전 대법관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박병대 전 대법관에게는 징역 5년을, 고영한 전 대법관에게는 징역 4년을 각각 구형했다.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당사자가 아닌 사법부의 조직적 이해관계까지 고려된다는 것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허용될 수 없다”며 “그런데도 재판 독립을 파괴하고 특정 판결을 요구해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는 철저히 무시됐고 당사자들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받았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이어 “사법 행정권의 최고 책임자인 피고인들이 재판에 개입해 법관의 도리를 심각하게 훼손한 초유의 사건”이라며 “사법부 스스로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져야만 사법부가 다시 정상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은 여전히 관련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날까지 1심 공판만 277차례 진행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김 대법원장이 임기 중 결론이 나오지 않도록 재판을 의도적으로 지연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통상 결심 공판 약 한 달 뒤 선고 기일이 열리지만 이번 사건은 오는 12월22일 선고가 이뤄질 예정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최후 진술에서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음흉한 정치세력이 바로 이 사건의 배경으로 검찰이 수사라는 명목으로 그 첨병 역할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것은 수사가 아니라 특정 인물을 표적으로 무엇이든 옭아넣을 거리를 찾아내기 위한 먼지털기식 행태의 전형으로, 불법적인 수사권 남용”이라고 주장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부터 6년간 임기 중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박·고 전 대법관 등에게 반헌법적 구상을 보고받고 승인하거나 직접 지시를 내린 혐의로 2019년 2월 구속 기소됐다. 그는 사법부 숙원인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청와대·행정부 등의 지원을 받기 위해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 손해배상청구 소송, 통진당 의원 지위 확인 소송,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관련 행정소송 등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 등을 받는다. 각종 재판 개입과 사법부 블랙리스트 작성, 비자금 조성 등에 적용된 혐의만 47개에 달한다. 이번 사건으로 전·현직 판사 100여 명이 수사 대상에 올랐고 이 가운데 14명이 기소됐다. 관련 재판 대부분이 마무리됐지만 본안 사건인 양 전 대법원장 사건과 함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재판(230차 공판)이 공전하면서 1심에만 4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