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2일 러시아 아무르주(州)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북·러 정상회담을 개최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가장 탐내는 무기 체계가 두 가지 있다. 군 정찰위성과 ‘극초음속 미사일’이다. 러시아 순방길에 올라 아직도 북한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김 위원장이 16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과 함께 러시아 전략 무기들인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을 시찰한 것은 이 같은 속내의 반증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쇼이구 장관과 러시아 항공우주군을 찾아 주요 장비를 둘러봤다. 특히 미그(Mig)-31I 전투기에 장착된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 미사일 시스템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이 전했다.
‘Kh-47’로 알려진 킨잘은 음속의 5배 이상으로 비행하는 것으로 알려진 최첨단 무기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요격이 불가능하다”고 자랑한 바 있어 ‘푸틴의 자존심’을 상징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속도가 마하 5(시속 6120㎞) 이상으로 비행하는 미사일을 뜻한다. 이 무기는 극초음속비행체(HGV)와 극초음속순항미사일(HCM)으로 나뉜다. 마하 1~5까지는 초음속, 마하 5부터는 극초음속이다. 마하 5 이상이면 서울에서 평양 상공까지 1분15초에 도달할 수 있다. 음속이 초당 343미터일 경우 마하 1.0은 시속 1235km다.
주목할 대목은 미국과 러시아 등 군사강국이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경쟁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향후 전장의 판도를 바꾸는 ‘게임체인저’로 꼽히기 때문이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기존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의 장점만 모아 설계했다.
“극초음속 무기 방어할 어떤 수단 없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발사 뒤 탄도미사일처럼 상승해 고점에서 내려오다 대기권 안에서 방향을 바꿔 순항미사일처럼 비행한다. 문제는 속도가 마하 5 이상이고 고도와 방향을 바꾸는 비행 궤적을 보여 상대방이 예측이 불가능하다. 즉 현재의 미사일 방어시스템으로는 탐지와 요격이 매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전략사령부 존 하이텐 사령관은 지난 2018년 3월 미 의회 군사위원회에서 “극초음속 무기를 방어할 수 있는 어떤 수단도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탄도미사일은 속도가 빠르고 파괴력이 강한 무거운 탄두를 탑재하는 고위력 무기다. 하지만 상대가 비행 궤적을 예측할 수 있어 단계별로 요격하는 미사일방어(MD)망을 구축하면 대응이 가능하다. 순항미사일 역시 저고도로 비행해 적 레이다에 들키지 않고 상대 지휘부, 군사시설 등 핵심 표적에 대한 정밀 타격이 가능한게 장점이 있지,만 음속 이하의 속도라서 육안으로도 관측이 가능해 적군의 대공화기와 전투기 요격에 취약하다.
이런 까닭에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은 세계 군사기술계의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러시아를 선두로 중국, 미국 앞서고 있고 독일, 프랑스, 일본, 인도 등이 따라가고 있다. 북한 역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개발 기술이 어려워 현재 실전 배치한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이 유일하다.
미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극초음속 미사일 분야에서 러시아는 선두 주자다. 마하 7(시속 8568km)의 속도인 ‘치르곤’과 중거리 탄도미사일 중 하나인 마하 20(시속 2만4480km)을 자랑하는 ‘아방가르드’는 실전 배치가 임박했다. 특히 아방가르드는 최대 16개의 분리형 독립목표 재돌입 핵탄두(MIRV)를 탑재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 탄두의 위력은 100-900kt(1kt는 TNT 1000t의 폭발력) 수준이다.
이미 실전 배치된 또 다른 극초음속 미사일인 ‘킨잘’은 전투기에 탑재해 마하 10(시속 1만2240km)의 속도로 2000km의 목표를 핵탄두나 재래식탄두로 무력화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통해 미국 미사일방어(MD)망을 무력화하는 전략적 타격 능력을 확보하고, 미 해군의 항공모함 전단에 맞설 수 있다는 게 러시아 군의 판단이다.
중국 또한 지난 2019년 10월 1일 건국 70주년 열병식에서 마하 10(시속 1만2240km)의 속도를 낼 수 있는 ‘둥펑-17’(東風, DF-17) 극초음속 미사일을 공개했다. 이어 극초음속 탄두를 단 순항미사일을 탑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안’(西岸) H-6N 전략폭격기의 사진도 함께 공개됐다. 현재 중국은 대만 타격을 위해 극초음속 미사일 ‘둥펑-17’을 죽국 남동부에 배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만 극초음속 미사일 ‘실전 배치’
미국도 올해 안에는 실전 배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까지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미 의회전문지 더 힐(THE HILL)에 따르면 미 국방부가 2024년 국방예산안에 조기에 24기의 극초음속 미사일 획득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미 정부는 극초음속 전투 임무를 충족하는 군수산업기반을 부양하기 위한 국방생산법을 발의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극초음속 개발은 상당히 진척돼 있지만 미 국방부는 아직 실전 배치하지 못하고 있는데, 생산 기반이 미비하고 실험 설비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매체는 분석했다. 이와 관련 미 랜드연구소 선임기술자 조지 나쿠지는 인터뷰에서 “미국이 곧 생산단계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한도 이에 질세라 개발 경쟁에 적극 뛰어들었다. 2020년 8월 당시 정경두 국방장관이 대전 국방과학연구소(ADD) 창설 50주년 기념식에서 초음속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군은 2018년부터 마하 5 이상의 지상발사형 극초음속 비행체를 개발 중이며, 2023년까지 비행 시험을 마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2020년 1월 8차 북한 노동당 대회에서 극초음속무기 개발을 공식화했다.
북한이 지난 2022년 1월 11일, 두 번째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시험을 끝냈다고 발표했다. 앞서 1월 5일 시험 때와 비교하면 비행거리는 7백Km에서 1000Km로 늘었고, 발사 후 6000Km 지점에서 7m 길이의 활공비행체가 분리되면서 240Km 정도를 선회기동했다고 했다. 속도도 음속의 10배인 마하 10에 달하고, 목표물을 타격하기 직전 이른바 회피기동을 통해 극초음속 미사일의 성능 실험이 성공적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최종시험이라고 표현을 썼는데 극초음속 무기 체계의 기술력을 최종확증했다는 강조인데, 우리 군은 판단을 보류하고 있다. 북한은 2021년 1월 8차 당 대회에서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을 공개하면서 핵심 5대 과업을 선정했다. 이 가운데 극초음속 무기 개발을 최우선에 두고 작년 9월부터 발사 시험을 해왔고 3번째 시험을 통해 ‘개발 성공’을을 선언한 셈이다.
이는 러시아와 중국에 이어 북한까지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기술력을 확보한 것으로, 극초음속 무기 분야에서 미국이 북한에 뒤쳐졌다는 의미라 의구심을 갖게 한다.
北극초음속 미사일은 中·러 ‘초기형’
그렇다면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기술력은 정말 어느 수준일까. 현재 러시아와 중국만 유일하게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북한이 개발에 성공했다는 극초음속 미사일은 이런 방식의 초기형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물론 북한의 주장대로 사거리 1000Km에 마하 10 정도의 속도라면 상당한 수준이다.
미국을 깜짝 놀라게 했던 중국의 극초음속 미사일은 미사일을 위성 궤도에 쏘아 올려 지구를 돌다가 특정 지점에서 하강하며 목표물을 타격하는 방식이다. 궤도를 한바퀴 다 돌기 전에 미사일을 발사하기 때문에 ‘부분궤도폭격’이라고 한다. 궤도를 한 바퀴 다 돌면 정식 궤도비행으로 간주하는데, 이는 대량파괴무기의 궤도 비행을 금지한 1967년 우주 조약에 저촉된다. 이 극초음속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하면 말 그대로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과 비교해 군사력이 열세인 중국과 러시아 입장에서는 이 미사일 하나로 국제 정세 판도를 바꿀 수도 있기어 개발에 몰두하는 것이다.
북한 역시 같은 이유로 극초음속 미사일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만약 실전배치 한다면 유사시 한반도로 출동한 미 항모전단을 위협할 전략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군 당국도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미 육군과 공군이 마하 5 이상의 초고속으로 적 목표물을 타격하는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에 잇따라 성공했다. 중·러에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극초음속 미사일 분야에서 미국의 반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까닭이다.
미 국방부 DARPA(방위고등연구계획국)에 따르면 지난 7월에 뉴멕시코주 화이트샌즈 미사일 실험장에서 ‘오프파이어즈’(OpFires·Operational Fires) 신형 극초음속 미사일 첫 시험발사에 성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DARPA는 오프파이어즈 미사일이 이동식 발사대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되는 장면이 담긴 30초 분량의 영상도 공개했다.
오프파이어즈는 최대 사거리가 1600여㎞에 달한다. 마하 5 이상 속도로 초고속 비행을 하면서 16분 내에 1600여㎞ 떨어진 목표물을 타격하는 게 가능하다. 미사일 앞부분에 극초음속 활공체(글라이더)가 달려 있어 활공체가 목표물을 타격하는 방식이다.
현재 세계 군사강국들이 개발 중인 극초음속 무기는 두 종류다. 우선 극초음속 활공체다. 초기엔 탄도미사일처럼 상승했다가 일정 고도에서 활공체가 추진체와 분리된 뒤 마하 5 이상의 초고속으로 활강하는 방식이다. 둘째는 스크램제트 엔진으로 비행기처럼 날아가는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이다.
美, 중국 겨냥해 ‘ARRW’ 개발 중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방식은 미 공군이 채택하고 있다. 지난 2022년 5월 전략폭격기 B-52H가 캘리포니아주 남부 해안에서 AGM-183A ARRW를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미 공군은 밝혔다. 당시 미 공군은 성명을 통해 “항공기에서 분리된 ARRW의 부스터가 예상대로 점화되고 연소돼 음속보다 5배 빠른 극초음속 속도를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미 공군이 잇따라 시험발사에 성공한 극초음속 미사일 공중발사 신속대응무기(ARRW)는 미 록히드마틴사가 개발 중이다. 오프파이어즈는 중국이 미 항모전단 등을 겨냥해 배치한 DF-21D 및 DF-26 대함탄도미사일, DF-17 극초음속 미사일 기지 등에 대응할 무기로 C-130 수송기로도 신속하게 주일미군 기지 등에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선 주한미군 배치도 가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프파이어즈 발사차량에는 극초음속 활공체를 장착한 3발의 지대지 미사일이 탑재되며, 미 육군 고기동 대형 전술트럭이 이동식 발사차량으로 활용된다. 내년 중 완전 비행시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록히드마틴이 개발중인 공중발사 신속대응 무기(ARRW)의 최대 속도는 마하 20에 달한다. 앞서 ARRW는 세차례나 시험발사에 실패한 적이 있어 중·러에 크게 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 러시아와 중국은 이미 2~3년 전부터 극초음속 미사일을 실전배치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일부 군사목표에 대해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을 발사, 세계 최초로 극초음속 미사일을 실전에 사용했다고 밝혔다.
한국 군도 2010년대 중반에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뛰어들었다. 2020년 8월 정경두 당시 국방장관이 대전 국방과학연구소(ADD) 창설 50주년 기념식에서 초음속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우리 군은 음속의 5∼7배 속도로 비행하는 극초음속 미사일을 2030년대 초까지 실전 배치할 계획을 갖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에 따르면 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착수한 이후 실전배치를 위한 30개 핵심 기술과제 가운데 6개 과제를 2020년 12월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진행 중인 11개 과제도 2024년까지 마무리하고, 남은 13개 과제는 2022내년부터 2029년까지 단계적으로 진행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전문연구위원은 “우리 군은 탄도미사일 방식의 극초음속활공체(HGV)와 극초음속순항미사일(HCM)을 각각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비행제어 기술 개발이 관건이 될 것 같다”고 분석했다.
30∼70km 고도에서 분리된 탄두가 음속의 5배(마하 5·시속 6120km) 이상으로 저고도에서 활강하는 극초음속 미사일은 비행궤적과 낙하지점 예측이 힘들어 미사일방어 체계를 무력화할 비대칭 전략무기로, 향후 전장에서 게임체임저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 군은 한국형 전투기에도 극초음속 미사일을 탄재해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DD는 2021년 사전개념연구 결과 국내 기술 수준과 KF-21 무장 탑재중량을 고려하면 사거리 500㎞ 이상, 속도 마하 5 이상의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KF-21 ‘보라매’ 극초음속 미사일 장착
이를 위해 ADD는 지상발사형 극초음속 비행체를 개발해 2022년 비행시험까지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이 비행체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해 서울 상공에서 발사하면 250㎞ 떨어진 평양까지 1분 15초면 도달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추게 할 계획이다. 따라서 ADD는 최대속도 마하 2~3인 초음속 공대함 미사일을 개발해 KF-21에 장착할 것으로 추정된다.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2019년 2월 제326차 합동참모회의에서 KF-21에 초음속 공대함미사일 개발 및 장착을 결정한 바 있다.
이외에 군은 KF-21에 공대공미사일 (2종), 공대지 폭탄(9종), 공대지미사일(1종)을 탑재할 예정이어서 극초음속 미사일과 초음속 미사일을 추가로 장착할 경우 북한의 심장부에 단 한방의 공격으로 초토화하는 ‘족집게 타격’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복안이다.
군 소식통은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에 장착할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안)을 합동참모본부에 요청해 추진 계획이 사실상 시작됐다”고 전했다. 합참에 요청하는 절차는 무기 개발을 위한 공식적인 첫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