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고대 문명인 가야 제국을 상징하는 고분군 유적 7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총 16개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17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이날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제45차 회의에서 ‘가야 고분군’(Gaya Tumuli)의 세계유산 등재를 최종 확정했다. 위원회는 “주변국과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독특한 체계를 유지하며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가 인정된다”고 평가했다.
앞서 지난 5월 위원회의 심사·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는 가야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를 권고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1년에 한번 의장국에서 회의를 열어 신규 세계유산 등재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회의 기간에 맞춰 사우디 현지를 찾은 최응천 문화재청 청장은 “세계에서 인정한 가야고분군의 가치를 지키고 널리 홍보해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세계유산으로 만들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등재된 ‘가야 고분군’은 고대 문명 가야를 대표하는 유적이자 1∼6세기 중엽에 걸쳐 영남과 호남 지역에 존재했던 고분군 7곳을 묶은 연속유산이다.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 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고성 송학동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으로 구성된다. 7개의 고분군으로 이뤄진 가야고분군은 가야 문명을 실증하는 증거로 평가된다. 각 지역에 고분이 산재돼 있다는 점에서 가야가 1~6세기 한반도 남부에서 연맹 체제를 유지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고령 지산동고분군은 5~6세기 가야 북부 지역을 통합하면서 성장한 대가야를 대표하는 고분군이다. 대형무덤에서 많은 양의 토기와 함께 금동관, 갑옷, 투구 등이 출토됐다. 김해 대성동고분군은 금관가야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고인돌 등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발견됐다. 출토된 토기류와 중국제 거울 등을 통해 금관가야가 국제 교역에서 활발한 역할을 했음을 엿볼 수 있다.
함안 말이산고분군은 아라가야 왕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말이산 45호분에서 나온 상형 도기 세트는 가야인의 독특한 문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해 10월 보물로 지정됐다.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비화가야 최고 지배자 묘역으로 추정된다. 고성 송학동고분군은 소가야식 토기뿐 아니라 마구 등 교역품으로 쓰였을 유물들이 발견됐다. 합천 옥전고분군에서는 토기류, 철제 무기류, 장신구류 등이 출토됐다.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은 5~6세기 가야연맹의 서북부 내륙에 있던 정치체를 대표하는 고분군이다. 32호분에서는 백제 왕릉급 무덤에서만 나오는 청동거울, 백제계 금동신발 조각이 나왔다. 호남 지역의 가야 유적으로서는 처음 사적으로 지정됐다.
이들 가야 고분군은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이룬 주변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 공존하면서도, 정치적으로 연맹 체계를 유지했던 독특한 동아시아 고대 문명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코모스는 가야고분군에 대해 “세계유산 평가기준 가운데 ‘현존하거나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유일한 또는 적어도 독보적인 증거’를 충족한다”고 밝혔다.
가야 고분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그동안 고대사 연구에서 홀대받던 가야문화권이 재조명받을 것이란 기대도 크다.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전공 교수는 “가야 고분은 ‘잃어버린 역사’, ‘잊힌 왕국’이라 일컬어지던 가야의 역사·문화를 드러내는 보고(寶庫)이자 타임캡슐”이라고 전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를 시작으로 이번에 가야고분군까지 문화유산 14건, 자연유산 2건 등 총 16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