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국제 통계 정책을 선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것으로 드러났다. 국제 통계 기준 수립 등을 논의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통계정책위원회(CSSP) 의장단에 합류한 지 이틀 만에 이탈하게 된 것이다. 통계청이 모든 역량을 동원해 의장단 재선출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일 서울경제신문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공동 취재에 따르면 통계청은 이달 21일 ‘경제 회복성을 위한 새로운 데이터 국제회의’ 참석차 방한하는 폴 슈라이어 OECD 통계데이터국장에게 우리나라의 의장단 재합류 의사를 전달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이형일 통계청장은 7월 슈라이어 국장에게 “다양한 양자 협력 사업에 (통계청이) 헌신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의 공개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슈라이어 국장은 “한국의 참여를 논의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원론적인 답신을 보냈다.
문제는 의장단 이탈 과정에서 잃은 신뢰 회복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6월 한훈 전 통계청장은 의장단에 선출된 지 불과 이틀 만에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으로 내정됐다. 통계정책위 의장단은 통계청장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만큼 통계청장직에서 물러나면 의장단 활동 또한 자동 종료된다.
특히 한 전 청장은 당시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의장단에 선출됐다. 이 때문에 국제 통계 정책을 논의할 때 아시아 지역의 특수성을 대변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이틀 만에 의장단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또다시 아시아권 국가들에 지지를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역대 의장단 중 이틀 만에 사퇴한 사례도 전무하다는 게 서 의원 측의 설명이다.
서 의원은 “윤석열 정부는 무책임한 인사로 국제적 촌극을 불러일으킨 데 이어 수습마저도 통계청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국정감사에서 통계청의 내년도 의장단 재선출 준비 과정을 철저히 점검해 협력 가능한 부분은 초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