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인터내셔널이 지난달 4.5% 안팎의 금리로 2000억 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했다. 회사채 신용등급 AA-인 포스코인터는 2019년에 똑같은 금액을 조달할 때는 1.5% 안팎의 금리만 내면 됐다. 신용등급은 같은 기간 AA-로 우량 등급이고 영업이익은 6000억 원에서 올해 처음 1조 원을 돌파한 것으로 기대되는 등 실적도 대폭 개선됐지만 이자 부담은 더 커졌다. 고금리 시대에 기업들이 겪는 고충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시장금리 상승이 계속되면서 국내 주요 기업들의 투자 부담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전기차 핵심 소재 양극재를 생산하는 에코프로는 올 7월 1000억 원 회사채를 발행하며 5.2%에 달하는 금리를 감내해야 했다. 에코프로 회사채의 신용등급은 A-로 이 등급은 코로나19 전만 해도 2%대 금리면 조달할 수 있었다.
금리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제품 판매에 따른 ‘마진’도 예전보다 높아져야 이익이 생긴다. 포스코인터가 생산하는 천연가스나 에코프로의 양극재 가격이 하락하면 금리 하락기 때보다 손실을 볼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래 성장을 위해 시급히 투자를 해야 하는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높은 금리를 감내하는 가운데 현재 현금이 어느 정도 확보된 기업들은 차환 대신 현금 상환을 통해 위험을 줄이고 있다. 미래 투자 여력을 줄여서라도 당장의 부담을 줄이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다. 한국항공우주(KAI)는 6월 2000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일시 상환한 데 이어 11월 만기가 돌아오는 3000억 원 회사채도 현금 상환하기로 결정했다. 일종의 긴축이다. 2027년까지 미래형 전투기 개발을 위해 1조 5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준비하는 KAI는 당장 금리 인상에 따른 부채 부담을 줄이는 전략을 택했다.
KAI만 그런 것이 아니다. 1위 건설기계장비 기업 HD현대인프라코어는 올해 3600억 원 이상의 회사채를 선제적으로 상환했다. HD현대의 건설기계 3사 사장들은 지난해 말 사장 명의 사내 공지에서 “현금 확보를 위한 전략을 최우선적으로 시행할 것”이라며 “채권 관리도 보다 면밀하게 하고 운전자본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대응 체계를 강화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시장은 HD현대 건설기계 3사 사장들이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를 표한 시점보다 금리가 더 오른 상황이다.
주요 기업의 최근 사채 조달을 보면 상대적으로 재무구조가 안 좋은 기업들이 빚을 내면서 ‘부채 양극화’ 조짐도 나오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의 나이스C&I에 따르면 A급 이하 비우량 회사채의 발행 금액도 커지고 있다. 올 9월까지 A급 이하 비우량채 발행액은 8조 849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 가량 증가했다.
아예 회사채 신용등급 자체를 받을 수 없는 중소기업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2분기 중소기업이 저축은행·보험사·상호금융 등 비은행권에서 빌린 대출 연체액(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23조 9900억 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9조 2800억 원)보다 158.5%(14조 7100억 원)나 급증했다.
2분기 대출 연체율도 4.61%로 전년 동기(1.95%) 대비 2.66%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2%대에 머물던 중소기업의 비은행권 대출 연체율은 올 들어 4%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대기업과 달리 자금 상황이 불안정한 중소기업들이 은행권보다 높은 금리를 요구하는 비은행권으로 밀려났다가 연체에 몰린 경우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미국의 추가 긴축 가능성에 당분간 고금리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중소기업의 자금난도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 의원은 “고금리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중소기업과 비은행권 부실 관리를 위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이 마련돼 있는지 의문”이라며 “정부는 중소기업의 비금융권 연체율 상승이 대규모 금융 부실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금 조달 비용이 늘수록 그 규모는 축소되면서 결국 투자 역시 위축된다. 투자가 줄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생산도 감소해 고용·가계소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소비마저 줄어든다. 경기 악순환의 첫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다. 중견기업의 한 관계자는 “고금리의 상황에서는 대기업 역시 높은 이자를 주면서 막대한 자금을 차입하려는 결정을 미룰 것”이라면서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악순환의 시작은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