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2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면담에서 공급망 불안정 등에 대한 협력을 요청했지만 중국은 ‘뼈 있는 말’로 응수했다. 시 주석은 “한국이 중한 관계를 중시하고 발전시키겠다는 것을 정책과 행동에 반영해달라”며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중국은 시 주석의 방한과 관련해서도 공식 발표문에는 언급하지 않는 등 이중적 태도를 보여 한국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한미일정상회의에 대해서는 한일에 중국 측 경제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우호적인 신호를 내비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무총리실과 외교부는 23일 진행된 한 총리와 시 주석 간의 ‘양자 면담’과 관련, 한중 양측이 동반자로서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데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양국이 산업 협력과 공급망의 안정적인 관리,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후속 협상 등에 있어 협력해나가는 한편 문화 및 인적 교류의 증진을 위해서도 협력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배터리 등 글로벌 공급망 협력과 더불어 희토류·요소수 등 중국의 수출 규제로 우리 경제에 영향을 주는 자원·상품에 대한 우리 측 요청을 중국이 접수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한한령’의 영향을 받은 우리 음악·영화·드라마·게임 등 한류 콘텐츠 제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재고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 총리에 대한 중국 측의 배려도 컸다고 설명했다. 한 총리가 시 주석과 접견할 당시 시 주석은 “비행기로 3시간이면 오느냐”고 물었고 한 총리는 “1시간 30분 정도”라고 답했다. 시 주석은 “양국이 가까운 나라구나”라는 취지로 답하며 친밀감을 보였다는 것이다. 또 각국 사절단과의 오찬 당시 한 총리 옆 좌석에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앉은 점도 중국 측의 배려라고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한 총리와 왕 부장이 대화를 많이 했는데 한중 관계를 관리하겠다는 중국 측 의지가 담긴 좌석 배치”라고 언급했다.
우리 측의 이 같은 평가와 달리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문과 관영언론 ‘환구시보’의 보도 내용은 한국 정부에 대한 ‘뼈 있는 말’이 많이 담겼다. 시 주석은 “한국이 중한 관계를 중시하겠다는 것을 정책과 행동에 반영하고 서로 존중하며 우호 협력의 큰 방향을 유지하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정책에 한국이 동조해서는 안 된다는 압박이 담겼다는 평가다.
한중 경제협력에 대해서도 시 주석은 의미심장한 언급을 했다. 시 주석은 “중한 경제는 밀접하고 산업망과 공급망이 깊이 융합돼 양국이 상호 이익 협력을 심화해야 계속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은 14억 명 이상의 인구가 현대화에 진입했다”며 “거대한 시장을 더 개방할 것”이라고도 전했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중국을 배제하고 반도체 등 첨단 기술 공급망 재편에 참여할 경우 중국 시장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로 평가된다.
외교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해 중국이 우리 정부에 보내는 압박의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중국의 실익을 위해 지속해서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반영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중 사이에서도 ‘레토릭’이 거칠지만 서로 협력할 부분이 있으니 자주 만나는 것”이라며 “중국은 한국에 있어서도 중국의 이해관계를 정책에 반영하려고 압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 주석의 방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한중 평가가 달랐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시 주석이 “방한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고 설명했지만 중국 공식 발표문에는 이 같은 언급이 전혀 없었다. 대통령실은 이와 관련해 “시 주석이 한 총리에게 방한 문제를 먼저 언급한 만큼 이를 토대로 외교 채널을 가동해 중국 측과 본격적인 협의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중일정상회의에 대해서는 중국 또한 긍정적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정상회담이라면 양측이 주고받을 게 있어야 하는데 중국 측이 우리에게 얻을 게 많지 않아 시 주석의 방한에 대해 회의적”이라며 “한중일정상회의는 중국 측 리창 총리가 참석하면 되니 경제 분야에서 중국 측 목소리를 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 역시 “시 주석이 방한을 고려한다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부터 먼저 만나고 나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