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기조 장기화 우려로 국제 금융·외환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강달러 흐름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에 원·달러 환율은 결국 당국이 오랫동안 지켜왔던 심리적 저항선인 1340원대를 단숨에 뚫고 연고점을 경신했다.
2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원 오른 1348.5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3.3원 오른 1339.8원으로 출발한 후 상승 폭을 확대하면서 장중 한때 1349.5원까지 오르며 1350원 선마저 위협했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11월 23일(1351.8원) 이후 10개월 만에 최고치다. 역외 선물환(NDF) 시장에서는 1350원마저 넘어선 상태다.
이날 환율이 급등한 것은 주요국의 통화정책 흐름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미 연준은 이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고금리 기조를 장기화할 것을 분명히 했으나 유럽중앙은행(ECB)은 금리 인상 종료를 시사하고 일본중앙은행(BOJ)은 초완화 정책을 유지하는 등 다른 행보를 보였다. 여기에 국제유가 상승도 미국 긴축 장기화에 힘을 싣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주요국 통화정책 차별화로 달러화 강세 흐름이 오래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주요 6개 통화 대비 미국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106 선을 돌파했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2007년 10월 이후 10년 만에 4.5%를 넘어섰다. 이에 엔·달러 환율도 1달러당 150엔에 육박하면서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다만 원화 가치도 함께 절하되면서 원·엔 환율은 904.21원으로 전 거래일보다 3.45원 올랐다.
당국은 그동안 원·달러 환율 1340원을 마지노선으로 두고 이를 지키기 위해 시장 개입을 단행해 왔다. 올 들어 5월 2일(1342.1원), 8월 21일(1342.6원) 등 일시적으로 1340원을 넘어선 적이 있으나 당국의 적극적인 개입 등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환율이 하락 전환했다. 그러나 이날 저지선이 하루 만에 힘없이 뚫리면서 환율이 어느 수준까지 오를지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
이날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4.5%대로 상승하면서 추가적인 달러화 강세로 원화 매도와 달러화 매수가 동시에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며 “달러화 강세를 방어할 수 있는 유로화·엔화가 모두 약세인 데다 위안화마저 약세를 보이면서 환율이 급등했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에너지 가격이 오르고 있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이 좀 더 높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국제유가 상승과 함께 환율마저 빠르게 오르면 그동안 한은이 예상했던 물가 경로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간담회에서 미 연준의 통화정책 기대 변화로 외환시장이 받는 영향을 우려한 바 있다. 지난달 이 총재는 “미국이 시장 예상보다 훨씬 더 오래 최종금리를 가져간다고 발표해 시장이 크게 변동할 가능성이 있다면 미시적인 시장 개입을 통해서도 변동성을 줄이도록 대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