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일본 2위 이동통신사 KDDI와 손잡고 5세대(5G) 이동통신 확산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5G는 자율주행차 같은 사물인터넷(IoT) 전반에 활용될 것이라는 당초 기대와 달리 아직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에서만 주로 쓰이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새로운 통신 기술을 확보하고 맞춤 서비스를 발굴해 일본 내 5G 상용화를 주도하는 한편 네트워크 장비와 스마트폰 판매 확대를 꾀한다는 복안이다.
삼성전자는 일본 도쿄 KDDI 본사에서 ‘5G 네트워크 슬라이싱(망 쪼개기)’ 기술 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27일 밝혔다. 네트워크 슬라이싱은 소프트웨어(SW)를 활용해 하나의 통신망을 여러 가상의 망으로 쪼개고 이를 통해 다양한 주파수 대역을 제공하는 기술이다. 자율주행차, 로봇, 드론(무인비행체), 스마트홈(지능형 주택), 국방과 의료 인프라 등 IoT 전반에 5G를 적용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기술로 평가받는다.
특히 네트워크 슬라이싱은 초저지연이 필요한 자율주행이나 초고속이 요구되는 고화질 스포츠 경기 생중계처럼 맞춤 통신 기술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다. 가령 자율주행차는 운전자의 스마트폰은 물론 도로 위의 다른 차량, 여러 교통관제시스템과 실시간으로 통신을 주고받아야 한다. 이런 사물 간 통신들은 각기 다른 다양한 주파수 대역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모든 주파수에 대응하는 통신망 인프라가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모든 주파수마다 망을 구축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이같은 인프라 한계를 극복할 대안이 네트워크 슬라이싱이다. 심병효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망 투자 비용은 물론 사물들이 통신 주파수를 시시각각 바꾸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 지연도 줄일 수 있다”며 “5G 기술이 성숙해질수록 네트워크 슬라이싱과 같은 신기술 개발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술을 활용한 5G 서비스 시장 규모는 올해 7억 5900만 달러(한화 약 1조 원)에서 2030년 136억 6200만 달러(약 18조 원)로 연 평균 51.1% 성장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관련 기술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지만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해 KDDI와 협력하고 있다. 양사는 2020년 세계 최초로 5G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술을 시연한데 이어 올해 초 도쿄 시내에서도 관련 기술을 검증한 바 있다. 앞으로 이 기술을 고도화하는 것은 물론 실질적인 서비스 개발과 사업모델 발굴을 통해 상용화하는 데도 협력할 방침이다.
노키아·화웨이와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삼성전자는 슬라이싱 기술을 통해 네트워크 사업 확장도 노린다. 이와 관련해 김우준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장(사장)은 이달 7일 서울에서 열린 글로벌 통신 행사 ‘모바일360’ 기조연설을 통해 “5G는 사람뿐 아니라 사물 간의 다양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며 “모든 종류의 망을 다 투자할 수는 없으므로 SW 기반의 온디맨드(주문형)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NTT도코모에 이어 일본 2위 통신사인 KDDI와의 협력은 스마트폰 판매 확대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일본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에 크게 밀리고 있지만 최근 10% 안팎의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이번 협력을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 장비 사업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일본 내 5G 주도권을 바탕으로 스마트폰 같은 일반 소비자 대상의 단말기 사업까지 연계해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