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호박시

김순이


시라는 게 다 뭐꼬?

배추시 아니면 고추시



그럼 아니 아니 호박시

호박시를 한번 심어볼까?

내 평생 시라고는 종자 씨앗으로만 생각했다

호박시를 큰 화분에 심어놓고



매일같이 시가 되어 나오라고 기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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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지나도 시는 나오지 않고

싹이 터서 파란 두 잎이 나오더니

줄기가 뻗어나가고 꽃이 피고 호박이 열리더라

아하, 시란 놈은 이렇게 꽃이 피고

열매가 대롱대롱 매달리는 거로구나!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다가 한글을 갓 배운 어머니가 쓴 작품이다. 선생님이 너무하셨다. 아직 맞춤법도 어려운 분께 글쓰기의 꽃, 시를 쓰라고 하셨으니. 벌써부터 시와 씨가 혼동되어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지 않은가. 선생님이 잘하셨다. 호박시를 호박씨로 알아들은 어머니가 훌륭한 시를 키워내지 않으셨는가. 시는 배우는 게 아니라 삶에서 꺼내는 것이다. 까막눈이지만 시를 살았던 분이 한글을 떼자 곧바로 시인이 되었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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