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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생리의학상] 교수직 박탈에도 연구 고집…평생 매달린 mRNA로 '엔데믹' 일등공신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수상 커리코 교수

코로나 정복 'mRNA 백신 어머니'

힘겨운 연구비 조달·암수술 딛고

와이스먼 교수와 초고속 백신개발

코로나19 팬데믹의 ‘게임 체인저’인 mRNA 백신 개발의 토대를 쌓아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커털린 커리코(오른쪽) 헝가리 세게드대 교수와 드루 와이스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 펜실베이니아의대(University of Pennsylvania’s Perelman School of Medicine) 홈페이지코로나19 팬데믹의 ‘게임 체인저’인 mRNA 백신 개발의 토대를 쌓아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커털린 커리코(오른쪽) 헝가리 세게드대 교수와 드루 와이스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 펜실베이니아의대(University of Pennsylvania’s Perelman School of Medicine) 홈페이지





미국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펜실베이니아대 의대에서 ‘메신저리보핵산(mRNA) 연구를 포기하라’는 종용을 받은 것도 모자라 ‘교수 수준이 안 된다’는 판정까지 받았던 여성 과학자가 2일(현지 시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아 화제를 모은다. 코로나19 팬데믹의 게임 체인저로 꼽히는 mRNA 백신 개발의 토대를 닦은 커털린 커리코(68) 헝가리 세게드대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mRNA 백신’의 어머니로 불리는 그는 이날 연구 자금을 구할 수 없어 곤란에 처했을 때 파트너가 된 드루 와이스먼(64)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와 함께 공동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AFP통신 등 미국 언론은 커리코 박사에 대해 “mRNA 백신의 길을 닦은 과학 이단아”라고 평가하며 펜실베이니아대가 한때 그의 연구를 막아 교수직도 잃어야 했다고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커리코 박사는 1955년 헝가리 동부의 시골 마을에서 가난한 푸줏간 집의 딸로 태어났다. 세게드대 생물학과를 다닐 때인 1976년 평생의 화두인 mRNA를 접하고 큰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1982년 세게드대에서 생화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헝가리과학아카데미의 생물학연구센터에서 일했다. 이후 미국에서 mRNA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커지자 1985년 남편과 두 살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템플대 연구원이 됐다가 펜실베이니아 의대로 적을 옮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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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후 미국에서 동물 실험 결과 mRNA가 체내에 들어가면 면역계의 염증 반응을 일으켜 즉사하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그의 연구 인생에 불운이 닥친다. mRNA 연구 열기가 얼어붙으면서 그가 연구비 조달을 위해 여기저기에 제출한 연구 제안서가 모조리 퇴짜를 맞은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1995년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측은 교수 선임 코스를 밟고 있던 그에게 mRNA를 계속 연구하려면 교수직을 포기하고 하위 연구직으로 강등되는 것을 감수하라고 통지했다. 한마디로 mRNA가 아닌 다른 주제의 연구를 하라는 것이다. 커리코 교수는 2020년 말 AFP와의 인터뷰에서 “승진 예정이었지만 그들은 바로 나를 강등시켰고 내가 학교에서 나가리라고 예상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커리코 교수는 영주권이 없어서 비자를 갱신하려면 일자리가 필요했고 펜실베이니아대를 다니던 딸의 비싼 학비도 교직원 할인이 없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암 진단까지 받는 위기에 처한다. 그럼에도 그는 암 수술을 받으면서 박봉의 하위 연구직을 하며 mRNA 연구를 지속하기로 결단을 내린다. 이렇게 힘들었던 그의 인생에 빛이 들기 시작한 것은 1997년 펜실베이니아대에 부임한 와이스먼 교수와 이듬해 복사를 하러 복사기 앞에서 줄을 섰다가 인연을 맺으면서부터다. 당시 이미 저명한 연구자였던 와이스먼 교수는 외부 연구비를 조달할 능력이 있었다. 두 사람은 이때의 만남을 계기로 평생 mRNA 연구의 파트너가 돼 노벨상까지 공동수상하는 인연이 됐다. 커리코 교수는 2020년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내 월급은 같이 일하던 기술자보다 낮았지만 드루(와이스먼 교수)는 나를 지지해줬다”며 “그것이 내게 낙관주의를 심어줬고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커리코 교수는 2013년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측이 자신의 교수직 직위 회복을 거부하자 mRNA 백신을 개발하던 독일 바이오엔테크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들였다. 커리코 교수는 “당시 학교 측은 회의를 열고 ‘내가 교수 수준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내게 말했다”며 “내가 (바이오엔테크로) 떠난다고 말하자 그들은 ‘바이오엔테크는 웹사이트도 없는 곳’이라며 비웃었다”고 와이어드에게 털어 놓았다. 펜실베이니아대 의대는 이날 노벨 생리의학상 발표 이후 홈페이지에 와이스먼 교수와 함께 역시 이곳 특임교수로 재직 중인 커리코 전 수석부사장(현재 고문)의 사진을 게시하며 두 사람의 약력을 소개했다.

두 사람은 2008년 mRNA를 변형하는 방법을 개발한 뒤 mRNA를 지질 나노 입자로 포장하는 전달 기술도 개발했다. mRNA를 신체의 필요 부위에 도달시켜 면역 반응을 촉발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 기술을 토대로 한 화이자·바이오엔테크의 코로나19 백신은 코로나19 팬데믹의 ‘게임 체인저’가 됐다. 두 사람은 미국 타임지의 ‘2021년 올해의 영웅’에 선정됐으며 래스커드베이키의학연구상을 비롯해 의학·학술·연구와 관련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10여 개의 상을 휩쓸었다. 지난해에는 국내 세포 배양 백신의 선구자인 고(故) 박만훈 SK바이오사이언스 부회장의 업적을 기리고자 SK바이오사이언스와 국제백신연구소(IVI)가 공동 제정한 ‘박만훈상’을 받기도 했다.

커리코 교수는 이날 노벨상 발표 이후 한 스웨덴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교수도 아니었던 10년 전에도 엄마는 노벨상 발표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며 “엄마는 항상 방송을 들으면서 ‘어쩌면 네 이름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이어 “당시 나는 연구비를 받지 못했고 팀도 없었기 때문에 웃어 넘기기만 했다”며 “그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강등돼 교수도 아니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말씀에 ‘말도 안 된다’고 답했다”며 활짝 웃었다.


고광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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