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유례없이 길었던 올해 추석 연휴를 이용해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이스라엘 등 중동 3개국을 방문해 사업 현장을 점검했다. 재계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이 회장의 명절 출장에 ‘가족 중시’와 ‘전략적 행보’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담겼다는 해석이 나온다.
3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은 1일(현지 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서북부 타북주에 있는 네옴시티 건설 현장을 방문해 임직원을 격려했다. 이 현장에서는 삼성물산이 높이 500m, 길이 170㎞에 이르는 더라인(주거시설)의 교통 인프라 건설에 참여하고 있다.
이 회장이 이곳을 찾은 이유로는 먼저 전략적 중요성이 꼽힌다. 정재계에 따르면 국내 정관계 고위 인사들이 이달 중순께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할 예정인데 여기에 이 회장도 동행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이 일종의 ‘선발대’ 역할을 맡아 사전 정지 작업을 맡았을 가능성이 있다. 앞서 이 회장은 지난해 추석 때 파나마를 방문해 라우렌티노 코르티소 파나마 대통령에게 부산엑스포 지지를 요청한 바 있다. 단순히 삼성 경영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이익이 될 방향을 찾는 ‘경제사절단’의 역할을 한 셈이다.
삼성이 참여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의 공사비는 알려진 것만 해도 5000억 달러(약 670조 원) 수준으로 우리나라 내년도 예산(657조 원)을 웃돈다. 이 프로젝트는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약 1200㎞ 떨어진 타북 지역에 서울 면적의 44배에 달하는 2만 6500㎢의 스마트 도시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완공되면 중국 만리장성을 뛰어넘는 인류 최대 역사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네옴시티는 높이 500m 건물을 띠처럼 170㎞가량을 연결해 900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도시를 건설하는 ‘더라인’과 친환경 산업단지 ‘옥사곤’, 산악 관광단지 ‘트로제나’, 리조트 섬 ‘신달라’ 등 4개 프로젝트로 구성된다. 670조 원으로 잡힌 공사비는 진행 과정에서 더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원전·방산 시장 등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무궁무진한 잠재력까지 감안하면 이 회장과 같은 글로벌 경제 거물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가족 또한 중요한 키워드다. 이 회장은 명절 기간에도 집에 가지 못하고 열사의 땅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사우디아라비아 현장 임직원의 가족들에게 굴비·갈치 등 수산물을 직접 선물로 보냈다고 한다. 현장 임직원은 물론 가족들이 느꼈을 자부심을 미뤄 짐작할 만하다. 이 회장은 지난해 추석 때 방문한 멕시코와 파나마 현장 임직원 가족들에게도 굴비 세트를 직접 보내 노고를 격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현장 직원들에게 “중동은 미래 먹거리와 혁신 기술을 발휘할 기회로 가득 찬 보고”라며 “지금은 비록 타지에서 가족과 떨어져 고생하고 있지만 ‘글로벌 삼성’의 미래를 건 최전선에 있다는 마음으로 과감하게 도전하자”고 당부했다.
한편 이 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에 앞서 이집트 중부 베니수에프주의 삼성전자 공장을 찾아 TV 및 태블릿 생산 현장을 직접 둘러봤다. 이 공장은 삼성의 중동 및 아프리카 교두보 현장으로 이르면 연내 스마트폰 공장의 추가 착공을 앞두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달 28일에는 삼성전자 이스라엘 연구개발(R&D) 센터에서 혁신 스타트업과 신기술 투자 현황을 보고받고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미래 혁신 기술 확보 방안을 논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