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하이투자증권에 이어 이베스트투자증권까지 주식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한국거래소 시장조성자 업무를 관두기로 했다. 가뜩이나 증시가 부진한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매매가 뜸한 종목의 거래량이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증권사들이 시장조성 사업에서 잇따라 발을 떼자 금융 당국은 올 연말까지 면세 혜택 확대 등 새 대책을 마련해 발표하기로 했다.
5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이달부터 거래소의 시장조성 업무에서 완전 철수하기로 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최근 담당자들이 모두 이직한 탓에 3분기부터 이미 시장조성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베스트증권은 지난해 8월 한국거래소와 코스피·코스닥 228개 종목에 유동성을 제공하는 시장조성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시장조성은 투자자의 원활한 주식 매매를 돕기 위해 거래소가 2016년 도입한 제도다. 거래소와 계약을 맺은 증권사들은 거래량이 부족한 종목에 매수·매도 양방향 호가를 촘촘하게 제시해 주식시장 유동성을 늘리는 역할을 맡는다.
올 들어 거래소 시장조성자 자격을 반납한 증권사는 이베스트증권뿐이 아니다. 앞서 2분기에도 신한투자증권이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하이투자증권은 코스닥 시장에서 각각 시장조성 업무 계약을 해지했다. 이로써 연초만 해도 코스피 8곳, 코스닥 9곳에 달했던 시장조성자는 현재 코스피·코스닥 각각 6곳으로 줄었다.
코스피 14곳, 코스닥 13곳이던 2021년 3분기와 비교하면 2년 만에 절반도 되지 않는 수준이 됐다. 최근 거래소의 추가 신청 접수에 호응한 증권사도 메리츠증권 1곳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증권사들의 시장조성 업무 의무 충족 비율도 지난해 4분기에는 1개 사를 제외하고 모두 90%를 넘었다가 올 3분기에는 코스피 62.79%, 코스닥 54.70%로 낮아졌다.
최근 증권사들이 앞다퉈 시장조성 업무를 중단한 배경에는 낮은 사업 수익성과 까다로운 규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 인건비, 시스템 유지비 지출에 비하면 거래소에서 받는 수수료 등은 턱없이 적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평가다.
특히 2021년 9월 금융감독원이 시장조성자 9곳에 대해 시세조종·시장교란 혐의로 과징금 부과 결정을 내린 사건이 증권사들의 참여 의지를 크게 꺾은 계기가 됐다. 과징금은 결국 사전 지침이 없었다는 이유로 철회됐지만 당시 일로 증권사들은 시장조성 업무가 언제든 주가조작 혐의로 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거래소는 올 연말 시장조성자 제도 개선 방안을 새로 마련하기로 했다. 시장조성 지정 종목을 늘려 사업자에 대한 증권거래세 면세 혜택을 확대하고 증권사들의 의무이행률을 조정하는 안 등이 주요 검토 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