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美, 核항모 현지 급파…하마스 "인질 100명 넘어" 위협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다시 불붙은 화약고

전쟁 사흘째 사망자 1300명 넘어

바이든 "탄약 등 군장비 추가 지원"

이란은 하마스 공격 배후설 부인

유엔 안보리 즉각조치 도출 실패

9일(현지 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곳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펴보고 있다. AFP연합뉴스9일(현지 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곳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펴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하마스와 이스라엘군의 무력 충돌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핵추진항공모함 전단을 현지에 급파하는 등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반면 이란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승인했다는 보도가 나와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이란은 하마스를 돕는 방식으로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으로 확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8일(현지 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내각 회의를 열고 하마스에 대한 전쟁을 공식 선포했다. 9일 이스라엘군은 “지난 새벽 가자지구에 있는 수백 개의 하마스, 무장단체 이슬라믹지하드의 타깃을 공격했고 이스라엘 남부에 4개의 전투 사단을 파견해 침투해온 하마스와 전투를 벌였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분쟁 시작 48시간 만에 30만 명의 예비군을 소집하고 가자지구 분리장벽 인근의 통제권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하마스가 침투한 지역은 되찾았고 반격이 이어질 것이라는 의미다. 8일 워싱턴포스트(WP)는 미 당국자들을 인용해 “24~48시간 안에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지상 작전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전쟁이 사흘째 이어지며 인명 피해도 급증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망자는 700명이 넘었고 남부 레임 키부츠의 음악 축제 행사장 주변에서는 260구의 시신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가자지구에서 413명이 사망하는 등 이번 사태로 인한 사망자는 1300명을 넘어섰다. 부상자 역시 이스라엘 2100명, 가자지구 2300명 등 총 4400명에 달했다. 하마스 측은 “100명이 넘는 이스라엘인을 인질로 붙잡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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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심각하지만 국제사회의 외교적 노력도 기대하기 어렵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이 이사국들에 하마스의 극악무도한 테러를 비난할 것을 요구했지만 성명문 채택 등 즉각적인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유럽 주요 국가들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철회하기 시작했다. 독일은 연간 3억 4000만 유로(약 4800억 원)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개발 지원을 일시 중단했고 오스트리아도 1900만 유로(270억 원)의 원조를 끊었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가자지구를 봉쇄해 전기·식량·연료 공급을 모두 끊겠다”고 밝힌 데다 국제사회 원조도 사라지며 인구가 230만 명에 달하는 가자지구에 기아가 발생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이란이 개입하는 징후도 포착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틀 새 네타냐후 총리와 두 번 통화를 하고 “하마스 테러리스트에 의한 전례 없는 끔찍한 공격에 직면한 이스라엘 정부와 국민에 대한 완전한 지원을 약속한다”고 강조했다. 미 국방부는 제럴드포드 항모 전단을 동지중해로 이동시켰고 F-35 등 역내 전투기 편대도 증강했다. 항모 전단은 항공모함인 제럴드포드함, 순양함인 노르망디함, 구축함인 토머스허드너함 등으로 구성됐다. 특히 2017년 취역한 제럴드포드함은 비행기 75대 이상을 탑재할 수 있는, 현존하는 최대 핵추진항공모함으로 불린다. 미국은 이스라엘군에 탄약을 포함한 군 장비를 신속하게 제공하기로 했다.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이번 공격으로 최소 9명의 미국인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반면 이란이 하마스의 공격을 지원한 정황 또한 드러나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공격 계획에 이란 안보 당국자들이 도움을 줬고 이달 2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이란혁명수비대(IRGC) 장교들이 올 8월부터 하마스와 협력하며 지상·해상·공중으로 이스라엘을 급습하는 방안을 고안했다는 것이다. 하마스의 가지 하마드 대변인도 BBC 인터뷰에서 “이번 공격과 관련해 이란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았다”며 “이란은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이 해방될 때까지 우리와 함께하기로 약속했다”고 역설했다. 다만 주유엔 이란 대표부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를 유지하지만 이번 공격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란이 공격을 지시했다는 증거를 보지 못했다”면서도 “이란이 오랜 기간 하마스를 지원해왔다”고 설명했다.

한편 하마스의 이번 기습이 이스라엘이 아랍권 국가와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스라엘이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모로코 등 아랍권 국가와 관계를 정상화하는 ‘아브라함협약’에 서명하고 최근에는 미국 주선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도 국교 수립을 추진하자 고립될 것을 우려한 하마스가 행동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 외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합병 움직임도 하마스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네타냐후 총리는 재집권 과정에서 서안지구를 강제 합병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영국 가디언은 “수개월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무장세력 간 공격이 증가하고 있었다”며 “이스라엘 극우파들이 팔레스타인 영토 합병을 거듭 촉구한 것 역시 이번 공세를 부추겼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사법제도 재편을 둘러싸고 이스라엘 내 분열이 심각한데 이 같은 정치적 혼란상을 하마스가 파고들었다는 분석 또한 나온다.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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