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골프 골프일반

Full of Wonder_ ‘큐티풀’ 박현경

다양한 꿈으로 가득한 박현경에 대하여





프로 골프 무대에서 포커페이스가 꼭 정답은 아니다.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들을 보면 속내를 알 수 없는 얼굴로 모든 상황을 컨트롤하는 스타일이 많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박현경이 대표적이다. 만족한 플레이에 감추지 못하는 미소, 아깝게 빗나간 퍼트에 새어 나오는 시무룩한 표정…. 가벼운 투정에 귀여움 섞인 표정은 잘 쳤는데 생각한 곳에 딱 멈추진 않아 아쉬움이 조금 남는단 뜻일 것이다. 18홀 동안 다양한 표정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박현경 골프를 즐기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데뷔 2년 차인 2020년에 국내 최고 전통의 대회인 KLPGA 챔피언십에서 첫 승을 올린 박현경은 이듬해 같은 대회에서 또 우승했다. 첫 승 땐 ‘코로나19 시대 첫 우승자’로 외신에까지 보도됐고 두 번째 우승은 40년 만의 대회 2연패 진기록으로 뜨거운 화제가 됐다. 5년 차인 올해도 좀처럼 컷 탈락을 모르는 꾸준한 성적을 이어가고 있다.

골프장 밖의 박현경은 골프 클럽 대신 필기구를 든다. 조용한 카페를 찾아 좋아하는 책을 펼치고 와 닿는 대목을 노트에 옮겨 적으며 마음을 채운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오빠를 위한 야무진 꿈도 갖고 있다.



서울경제 골프먼슬리가 창간 1주년을 맞았다. 숫자 ‘1’ 또는 ‘12’와 관련한 추억이나 경험이 있다면?>>>

“1년 차 때, 그러니까 루키 때에는 우승이 없어서 굉장히 힘든 시간들이 많았다. 그런데 루키 해 1년을 지낸 다음에 첫 번째 우승을 했다. ‘1’ 하면 아무래도 루키 시즌 생각부터 나고 그다음 첫 승 때 기억도 떠오르는 것 같다.”

골프에 있어 항상 ‘왜?’라는 자문과 함께하는 선수로 알고 있다. 스코어가 좋아도 만족스럽지 않았던 부분을 곱씹고 파고드는….>>>

“왜 안 되는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뭘 보완해야 할지 분석하고 연구하는 건 선수로서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한테 좀 엄한 편인 것도 같다. 아빠 영향도 있다. 어떤 부분에서 부족함이 보인다 싶을 때 분석을 많이 해주시는 편이어서.”

‘이런 부분은 아빠랑 정말 무섭게 닮았다’ 싶을 때가 있나?>>>

“골프 칠 때 습관도 닮았다. 저는 퍼트할 때 늘 장갑을 낀 채로 한다. 근데 아빠도 투어 선수로 뛸 때 왼손 장갑을 벗지 않고 퍼트하셨다. 성격도 아빠랑 똑같단 얘기 정말 많이 듣는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박현경의 캐디인 아버지 박세수씨는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에서 뛰었던 선수 출신이다. 고향인 전북 익산에서 열린 2001년 익산 오픈에서 공동 8위에 오르기도 했다. 1999년에는 2부 투어 우승 경험도 있다. 당시 아내가 임신 중이어서 박현경의 태명은 자연스럽게 ‘우승이’가 됐다.)

성격의 어떤 점이 똑같나?>>>

“은근한 고집. 아빠랑 대화할 때 가끔 트러블이 생기는데 그건 서로 ‘내 말이 맞아’하면서 대치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속으로 생각한다. ‘아빠랑 나랑 정말 똑같구나’라고.”

MBTI(성격유형검사) 하면 어떻게 나오나?>>>

“저는 ESTJ(경영자 유형). 아빠는 성인군자형이라고 하는 INFP(중재자·이타주의자)가 나오던데 전 인정할 수 없다.(웃음) 그건 그냥 저한테 없던 일로 잊어버리려 한다.”

(ESTJ와 INFP는 정반대 유형이라고 한다.)

국내 남녀 72홀 최소타 기록인 29언더파 259타는 언제 깨질까. 깨는 사람이 나오긴 할까?>>>

“언젠간 깨지겠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가늠이 안 된다. 제가 선수 생활 하고 있는 동안엔 깨지기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10~15년 더 선수 한다고 해도 그 안에 깨질 수 있을까. 근데 깨지면 좋을 것도 같다. 그만큼 좋은 실력을 갖추고 좋은 결과를 내는 선수가 한국 골프에 나왔다는 거니까. 깨져도 아쉬울 것 같지 않다.”

(박현경은 고2 때인 2017년에 대구CC에서 열린 송암배 아마추어선수권에서 나흘 간 29언더파 259타 스코어로 우승했다. 남녀를 통틀어 국내 72홀 최소타 기록으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나흘 동안 몇 언더파씩 친 건가?>>>

“첫날 5언더파, 둘째 날 4언더파. 그리고 셋째 날 11언더파 치고 마지막 날 9언더파 보탰다.”

3·4라운드에 말이 안 되는 스코어를 적었다. KLPGA 투어 와서 당시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경기가 있었나?>>>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비슷하게 느낌을 받았던 때가 있다. 작년 대유위니아·MBN 여자오픈 2라운드에서 8언더파 쳤을 때다. 물론 이틀 간 20언더파 칠 때만큼은 아니었다.”

민트색 컬러를 유독 좋아하는 것 같다. 혹시 민트초코 음료도 좋아하나?>>>

“첫 우승 때 마지막 날 민트색 치마를 입었다. 그 전엔 민트색만 아주 막 좋아해서 입은 건 아니었고 파스텔 컬러를 좋아하다 보니 밝은 민트 아니면 밝은 핑크 이런 계열을 잘 입었다. 그러다 왠지 최종일에 그 옷을 입고 싶더라. 민트색 입고 우승했다 보니 이후 팬 분들 인상에 그 색이 많이 남았던 모양이다. 그 뒤로 민트를 더 좋아하게 됐다. 민트초코파는 아니다. 굳이 찾아서 먹진 않는다.”

반려견 이름이 ‘드림이’니까 꿈에 대한 얘길 해보자. 잠잘 때 자주 꾸는 꿈은? 그리고 미래에 이루고 싶은 꿈은 뭔가?>>>

“어떻게 이렇게 잘 때마다 매번 다른 꿈을 꾸나 싶을 만큼 항상 꿈이 다르다. 드림이는 ‘늘 꿈을 꾸며 살자. 그러면 그 꿈이 이뤄지리라’는 뜻을 담아서 지은 이름이다.”

미래에 이루고 싶은 꿈은?>>>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성적, 자랑스러운 타이틀을 안고 은퇴하는 게 일단 꿈이다. 그리고 아빠가 투어 선수셨으니 아빠를 위한 연습장을 하나 만들어드리고 싶다. 몇 년 전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엄마께는 커피숍을 차려드릴 거다. 그리고 오빠. 지금 헬스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다. 건물을 사서 아빠를 위한 연습장, 엄마를 위한 커피숍, 오빠가 일할 피트니스 센터를 그곳에 다 들어가게 하면 좋겠다. 결국 꿈은 건물주인 건가.”

상금왕, 대상, 다승왕, 평균 타수 1위 가운데서 하나를 택할 수 있다면?>>>

“다 기분 좋은 상들이다. 대상을 먼저 타보고 싶긴 하다. 그다음이 상금왕일 듯하다. 대상은 기복 없이 꾸준한 선수가 받는 상이라는 생각이다. 꾸준하게 좋은 성적과 퍼포먼스를 내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선수 생활을 하고 있기에 대상이란 꿈을 더 강하게 꾸고 있다고 보면 된다.”

티샷 OB와 어프로치 샷 섕크, 1m 퍼트 실패 중에서 가장 겪기 싫은 건?>>>

“다 싫다. 음…. 아무리 봐도 다 똑같이 싫다. 이건 못 고른다.”

‘OO해도 잘했을 것 같다’하는 얘기 들어본 적 있을 텐데 기억 남는 건?>>>

“종목 특성상 저보다 훨씬 나이 많은 어른들도 많이 뵙는다. 그러면 공부해도 잘했을 것 같단 얘기를 여러 분들한테서 듣는다. 근데 이건 저 말고 다른 많은 선수들도 들어봤을 것이다. 운동도 똑똑하거나 어느 정도는 머리가 있는 사람이 더 잘한다고 하지 않나.”

학창 시절 좋아하는 과목은 뭐였나?>>>

“바른생활. 초등학교 때 가장 좋아했다.”




부모님한테 가장 특별한 장소는 아마 익산CC일 것이다. 골프장 소속 프로와 골프장 직원으로 만나 사랑을 키웠으니. 개인적으로 특별한 장소나 아끼는 공간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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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의 공간은 아니지만 저한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곳은 있다. 카페. 쉬는 날에 충전하는 법 중 하나가 노트 하나, 책 한 권 딱 들고 카페 가는 거다. 마실 거 하나 시켜 놓고 소음 안 들리게 에어팟(애플의 무선 이어폰) 노이즈 캔슬링으로 해 놓으면 준비가 끝난다. 그러면 이제 책을 보면서 좋은 내용들, 문장들을 노트에 천천히 옮겨 적으면서 곱씹는 거다. 집 근처의 한적한 카페라면 다 좋다.”

지금까지 방문해본 외국의 도시나 마을 중에 잊히지 않는 곳은?>>>

“돌아보면 해외를 그렇게 많이 나갔던 것도 아니다. 나가도 경기만 하고 돌아올 뿐이었다. 그래서 국내 여행이 더 기억 남는다. 강릉 여행이 참 느낌 있었다. 지역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멤버가 좋았다. 거의 자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친한 조혜림, 김리안 선수랑 2020년에 1박 2일로 다녀왔다. 운전? 운전은 저희 중 베스트 드라이버인 김리안 선수가 도맡았다.”

데뷔 때부터 한 번도 바꾸지 않은 건 뭔가? 골프 용품이나 생활 습관 등등.>>>

“2011년쯤부터 12~13년째 같은 브랜드의 골프볼을 쓰고 있고 의류 브랜드도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루키 때부턴지 그 이후부터였는지는 잘 기억 안 나지만 대회 기간엔 구워 먹는 고기는 거의 안 먹고 있다. 저녁에 구운 고기를 먹고 자면 몸이 좀 무거워지는 걸 느낀 이후로 피하고 있다. 대회 기간엔 저녁은 최대한 가볍게 먹으려 한다.”

팬이 지어준 뒤 널리 쓰이고 있는 별명인 ‘큐티풀(큐트+뷰티풀)’이 이제는 브랜드가 됐다. 휴대폰 케이스와 스마트워치 스트랩 등 ‘박현경 굿즈’가 최근 나오지 않았나. 디자인 작업에도 참여했다고 들었다.>>>

“꽤 깊숙이 참여했다. (레터링과 로고 작업 등에서) 피드백을 되게 많이 주고받고 했던 것 같다.”

본인의 캐릭터가 생기고 굿즈가 나오고 하는 이런 현상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캐릭터가 생기고 그걸 활용한 아이템들이 나온다는 게 과분하면서 감사하다.”

팬이 많기로 유명하지 않나. 그럼 반대로 박 선수는 누구의 팬인가?>>>

“가수 이무진씨가 요즘 참 좋다. ‘잠깐 시간 될까’라고 올해 나온 곡이 있는데 그 노래 정말 좋다. 몰랐는데 저랑 동갑이더라. 더 정감이 간다.”

예전부터 발라드 곡을 엄청 좋아한다고 했다. 박현경의 ‘인생 발라드’는?>>>

“정확히 발라드 장르인진 모르겠지만 학생 때부터 좋아한 노래는 서영은의 ‘웃는 거야’다. 힘들 때 들으면 더 잘 들리지만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가사가 정말 좋다. 중학생 때부터 들었다.”

휴일을 알차게 보내는 나만의 슬기로운 노하우는?>>>

“쉬는 날 집에 있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누워만 있으면 오히려 몸이 더 굳는 거 같아서 혼자 막 돌아다닌다. 너무 많은 체력을 쓰지 않는 선에서. 맛집 찾아다니는 것도 좋아한다.”

‘아무리 먹어도 안 물린다’하는 나의 ‘최애’ 음식은? ‘닭’을 사랑하는 걸로 아는데 여전한가?>>>

“변하지 않았다. 닭 요리를 제일 좋아한다. 무난하고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으니. 한식·양식·중식·일식으로 나누자면 양식도 참 좋아하는 거 같다. 그렇지만 좀 자제하려 노력한다. 몸 관리가 최우선이니까.”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은?>>>

“요즘 ‘빵빵이의 일상’ 자주 본다. 귀엽고 웃긴 만화 캐릭터의 이런저런 일상을 보여주는 콘텐츠다. 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는 포인트가 있다. 유튜브보다는 인스타그램을 더 자주 들여다본다. 습관적으로. 손가락이 가는 대로 넘기다 보면 사회의 최신 이슈들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주변에서 ‘이슈에 뒤처진다’는 얘길 종종 듣는 편이라. 또래 애들이 ‘넌 진짜 어떻게 이걸 모르냐’고 한다.”

사회에서 2000년생이면, 빠른 친구들은 한창 입사 지원하고 있을 거다. 스스로 세 줄짜리 자기소개서를 쓴다면?>>>

"저는 책임감이 강합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책임감을 갖고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냅니다. 저는 사람들한테 밝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5년 차 시즌이 지나가고 있다. 데뷔 전 ‘5년 차면 이런 모습이겠다’ 상상했던 게 있나?>>>

“사실 루키 때만 해도 5년 차 모습까진 생각해본 적도 없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러갈 줄이야. 벌써 5년 차이고 좀 있으면 6년 차다. ‘언제 내가 5년 차가 됐지?’라는 생각뿐이다.”

요새 루키들 보면 어떤 마음이 드나?>>>

“귀엽게 느껴지면서도 대단하단 생각이 강하게 든다. 루키 때 저희 동기들도 잘하는 선수들이란 생각이었는데 5년 차가 돼서 신인 선수들을 보니 그 시절의 우리보다 더 대단한 것 같다. 정말 배울 점이 많은 루키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5년 뒤 내 모습을 그려본다면?>>>

“와, 그때면 10년 차다. 더 성숙해지고 철들고 더 예뻐져 있었으면 좋겠다.”

혹시 다른 일을 하고 있진 않을까. 갑자기 떠나고 싶어졌을 수도 있지 않나?>>>

“적어도 5년 뒤엔 아닐 것이다. 앞으로 목표는 10년을 잡고 있으니까 5년 뒤쯤엔 여전히 열심히 투어 생활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이든 아니면 어딘가 다른 나라에서든.”

해외 투어, 구체적으론 일본 투어에 대한 관심도 내비친 적 있다.>>>

“일본은 2~3년 뒤에 한 번 준비하고 도전해보겠단 생각을 갖고 있다. 아직은 한국에서 이루고 싶은 게 더 많다. 해외로 가더라도 국내에서 주요 타이틀 하나는 따고 가고 싶은 마음이라서. 그런데 2~3년 지났는데도 타이틀 못 따면 어떡하지? 아, 가서 따는 것도 멋진 일일 것 같다.”

[서울경제 골프먼슬리]

PROFILE

출생: 2000년 | 정규 투어 데뷔: 2019년 | 소속: 한국토지신탁

주요 경력:

2023시즌 하나금융 여자오픈·메디힐 챔피언십·두산 매치플레이 준우승, 2021년부터 53개 대회 연속 컷 통과

2020·2021년 KLPGA 챔피언십 우승

2020년 아이에스동서 부산오픈 우승

2019년 신인상 포인트 3위


양준호 기자 사진=박태성 골프전문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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