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일 러시아 보스토치니우주기지에서 열린 북러정상회담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 초 노동당 제8기 제6차 전원회의에서 밝혔던 ‘신냉전’ 구도를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국제 관계는 북한이 희망하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체제보다는 오히려 ‘한미일+중국’ 대 ‘북러’의 구도를 형성토록 하고 있으며 북한은 전통적인 ‘스윙 외교’로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전략적 가치를 오히려 떨어뜨리는 포지션 변화를 했다. 즉 김일성이 냉전 시기 ‘외교에서의 자위’를 내세워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포지션을 바꾸며 전략적 가치를 높이고자 했다면 신냉전을 앞세운 김정은은 러시아에 완전히 편승해 ‘외교에서의 자위’를 상실했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10년을 지나면서 경제에 이어 외교도 전략적 실패로 나가고 있다. 동굴의 우상에 빠져버린 북한의 핵 정책 때문이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외에는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립된 러시아와의 전략적 관계 발전을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필요한 기술이전과 식량 지원, 노동자 수출로 경제난도 타개하고 전략적 군사 역량도 강화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북한의 전략적 셈법은 틀렸다. 첫째, 북러 간 전략적 관계를 공고히 한 다음 중국을 ‘북중러’ 구도로 끌어당겨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무력화하고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도 달성하겠다는 계산은 오히려 중국에 북중러 3자 구도를 이탈할 퇴로를 만들어줬다. 중국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와의 연대를 부담스러워할 뿐만 아니라 자칫 신냉전 담론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대 ‘한미일’ 대립 구도로 만들어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중국이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중정상회의 추진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도 이러한 맥락에 기인한다.
둘째, 중국이나 러시아 모두 한반도에서 전략적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북한의 비핵화’를 주장해야만 한다. 중러가 북한을 핵 국가로 인정하고 핵 능력 고도화에 필요한 기술을 이전하면 한반도에서의 중러의 중재자 역할 및 대북 영향력의 전략적 가치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북러정상회담 직후 헌법에 핵무력 지위와 핵무력 건설을 국가 활동 원칙으로 삼겠다고 성급히 헌법을 수정한 것은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김정은은 연해주·아무르주·하바롭스크주의 전략 자산 기지 방문을 통해 마치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만리장성·항저우·상하이를 7일간 공식적으로 방문한 소위 ‘세상을 바꾼 한 주’를 기대했겠으나 북한은 미국이 될 수 없다. 당시 미국은 중국 이니셔티브를 통해 미국·소련·중국과의 삼각관계에서 ‘스윙 포지션’이라는 유리한 위치에 섬으로써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위해 소련과 중국이 경쟁하도록 했지만 러시아 이니셔티브를 내건 북한에 대해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서로 경쟁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북한발 러시아 이니셔티브는 평화와 안정을 위한 한국의 글로벌 중추 국가의 역할과 기여를 증대시키고 있다. 북한의 핵 고도화와 대러 외교는 아이러니하게도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의 한국의 전략적 포지션을 한층 더 유리한 위치에 서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