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평생 월 5% 보장"…영농조합 수조원대 ‘폰지사기’ 의혹 [노인 노리는 불법유사수신]

평생 매달 5% 수익 보장 약속…15만명 모집

자체 디지털 자산으로 투자금 불려준다며 홍보

사실상 자본잠식 구조…관련당국 수사 착수

지자체는 해산명령 청구 신청

불법 사금융 피해자 중 60세 이상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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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매달 5%의 수익을 보장한다며 준조합원 약 15만 명을 모집해온 서울 서초구 소재 H 영농조합법인이 폰지 사기 의혹에 휩싸였다. 수익 창출이 쉽지 않은 자본잠식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해당 법인이 조 단위의 자금을 모았다고 밝히고 있고, 투자자 다수가 노인층이라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사회적 파장이 예상된다.

H 영농조합의 수익 구조 홍보자료. 독자 제공H 영농조합의 수익 구조 홍보자료. 독자 제공



15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H 영농조합은 매달 투자금의 5%를 자체 디지털 자산으로 배당해준다며 회원을 끌어모았다. 이들은 끌어모은 투자금의 2.6배를 ‘데이터값’이라는 자체 가상 자산으로 전환해 매일 이자 형태로 수익을 지급하고 있다. 자체 온라인 쇼핑몰과 가맹점에서만 사용 가능한 ‘쇼핑캐시’와 재투자가 가능한 ‘해피캐시’로 돌려주는 방식이다. 해피캐시 중 일부 금액은 매달 현금으로 출금할 수 있다. 하지만 전액을 일시에 출금하는 것은 막고 있고 재투자시 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고 있어 현금 인출을 더디게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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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영농조합의 수익 구조 홍보자료. ‘출자금’ 명목으로 회원들을 모집했다. 독자 제공H 영농조합의 수익 구조 홍보자료. ‘출자금’ 명목으로 회원들을 모집했다. 독자 제공


문제는 이들 법인의 수익 구조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영농조합법인은 규모와 무관하게 내부적으로 회계 감사가 가능해 외부 감시와 견제로부터 자유롭다. 하지만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H 영농조합의 재무제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납입 자본금은 1억 원, 매출액 107억 원, 순손실 300억 원, 부채총계는 791억 원에 달해 사실상 자본잠식 상태라 배당이 불가능한 구조다. 제보자 A씨는 “이른바 지역별 플랫폼장들이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피라미드식으로 노인들을 현혹하고 있지만 정작 수익이 어디서 나는지 구조는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신규 자금이 계속 들어오지 않으면 앞선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지급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폰지 사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사기 의혹이 불거진 이후 일부 가입자가 자금 반환을 요구하자 인감도장을 요구하는 등 비정상적 방법으로 탈퇴를 막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제보자 B씨는 “논란이 커지자 불법으로 모집한 투자금이나 조합 출자금이 아닌 선수금이라고 해명하고 있다”며 “이제는 법망을 피해가기 위해 ‘판촉 수당’이라는 명목으로 수익금을 지급하며 탈퇴를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합 측은 농·수·축산물 플랫폼 비즈니스로 수익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를 준조합원들이 나눠 갖고 있어 불법유사수신 행위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커지는 의혹에 관련 당국도 나섰다.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은 지난 2월 ‘방문판매등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H 영농조합을 압수수색하고 최근 대표이사 이 모(67) 씨 등을 불러 조사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압수물 분석 및 관련자 조사를 모두 마치고 현재는 검찰 수사 지휘를 앞두고 있는 단계”라고 밝혔다. 서초구청도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 사례를 발견해 지난 6일 해산 명령 청구를 법원에 신청했다. 법원의 해산 명령 결정이 나오려면 통상 2~3개월이 소요된다. 서초경찰서 역시 해당 조합과 관련된 범죄 혐의점을 들여다 보고 있다.

한편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불법 사금융 피해자 중 60세 이상이 36.5%를 차지하는 등 금융사기 취약계층인 노년층의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 업체들은 노인층이 은퇴 후의 삶에 관심이 높은 점을 이용해 은퇴 박람회 등으로 접근하거나 조합 사업을 가장해 ‘평생 연금’처럼 배당금을 지급한다고 현혹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인층에 불법 업체가 만든 가짜 전자지급거래 플랫폼에 수익금이 지급된 것처럼 속인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정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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