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인공지능(AI) 개발에서 국가와 정치체제에 상관없이 동등한 기회와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며 ‘글로벌 AI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미국이 대(對)중국 수출통제 대상에 저사양 AI 반도체를 추가한 다음 날 나왔다는 점에서 미국에 대한 대응 조치의 성격도 띤다. 특히 미국의 이번 추가 규제로 중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확보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1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정부가 전날 열린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 정상 포럼’에서 이 같은 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시진핑(사진) 중국 국가주석은 포럼에 참여한 정상들에게 “일방적 제재와 경제적 억압, 디커플링에 반대한다”며 “중국은 다른 국가와의 교류를 강화하며 ‘질서 있고 건전하며 안전한’ AI 개발을 촉진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은 이니셔티브에서 “모든 나라가 AI 개발에서 상호 존중하며 규모, 국력, 사회 시스템과 무관하게 동등한 권리·기회·규칙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다른 나라의 AI 개발을 막고자 이념적 선을 긋거나 배타적 그룹을 만드는 데 반대하며 기술적 독점과 일방적인 강압으로 장벽을 세우거나 공급망을 파괴하는 데도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SCMP는 “미국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중국은 미국이 반도체 수출통제를 넓힌 다음 날 이니셔티브를 내놓았다”고 전했다. 미국의 추가적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 와중에 정부 차원에서 이에 대한 대응 카드 중 하나로 이니셔티브를 제안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면서 “미중 모두 글로벌 규칙과 표준에 대한 리더십을 구축하고자 하면서 AI는 핵심 경쟁의 장으로 부상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중국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은 “중국은 어쩔 수 없이 국산화 대체로 갈 수밖에 없지만 완전한 국산화 실현을 위해 중국 그래픽처리장치(GPU) 칩 업체가 갈 길은 아직 매우 멀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국 입장에서 뼈아픈 대목은 GPU 생산 업체인 비런테크놀로지·무어스레드를 비롯해 자국 내 첨단 반도체 개발 기업들이 미 상무부의 블랙리스트에 대거 오른 점이다. 다만 시장조사 업체 가트너의 성링하이 반도체 연구 담당 부사장은 “비런과 무어는 아직 생긴 지 얼마 안 된 회사”라며 “제재의 포위망을 뚫고 싶다면 화웨이에 주로 기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