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韓 휠체어 여행 힘든곳 많아…'무장애' 점수 40점"

무장애 여행작가 전윤선씨

장애인 콜택시 등 워낙 숫자 적어

30~40분 기다리다 여행 툭툭 끊겨

대도시 제외 대중교통 이동 어려워

관광지 접근성 향상 활발한 사회활동

전윤선 작가가 가을을 맞은 덕수궁을 여행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전윤선 작가가 가을을 맞은 덕수궁을 여행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최근 휠체어를 타는 친구 4명과 순천 여행을 다녀왔는데 지역 내에서 이동 한 번 하는 데만 서너 시간이 걸렸어요. 지방에는 저상 버스 등이 거의 없어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30분 걸려 1인용 택시 한 대가 와서 한 명이 이용하면 다음 택시가 오기까지 또 한참을 기다리는 거죠. 대만이나 일본 등 해외를 여행할 때는 이런 이동 때문에 여행이 중단된다고 느낀 경우가 적은데 우리는 서울·부산 등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여행의 사슬’이 툭툭 끊어지는 곳이 아직 너무 많습니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국내는 물론 세계 곳곳을 누비며 무장애 여행을 하는 전윤선(사진) 작가는 한국의 무장애 여행 점수는 어느 정도 인가를 묻는 질문에 “40점”이라고 답하며 최근 순천 여행의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여행의 후일담도 전했는데 “용산역 도착 30분 전인 10시에 택시를 불렀지만 자택인 분당에 도착하니 새벽 한 시 반이었다. 집까지 세 시간이 걸린 셈”이라고 했다. 경기도의 저상 버스 비율은 19% 수준이며 장애인 콜택시도 워낙 숫자가 적어 30~40분은 항상 기다려야 하기에 벌어지는 일상이다. 전 작가는 “우리나라도 관광 약자를 배려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고 특히 문화재 등에도 엘리베이터나 경사로를 설치하는 등 시설 접근성 면에서도 크게 좋아지고 있다”며 “그럼에도 도시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은 대중교통 접근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기본적인 이동권 면에서 점수를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윤선 작가가 덕수궁 석조전 앞 장애인용 승강기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승강기가 생기며 장애인들의 덕수궁 방문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 전 작가의 설명이다.전윤선 작가가 덕수궁 석조전 앞 장애인용 승강기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승강기가 생기며 장애인들의 덕수궁 방문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 전 작가의 설명이다.



전 작가는 20대 후반 온몸의 근육이 점차 없어지는 희귀 병을 앓아 30대에 결국 보행 능력을 상실했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있으며 폐 근육도 약해져 집에 머물 때는 산소호흡기를 쓴다. 그럼에도 건강하던 시절 즐겼던 여행을 그만두기는 싫었다고 한다. “휠체어를 탄다고 해서 내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나는 그대로인데 왜 휠체어를 탔다는 이유만으로 주변 환경이 나를 밀어내는 걸까를 고민했죠. 그리고 내 본질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테니 그렇다면 환경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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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작가는 38세가 되던 해인 2005년 휠체어를 타고 비장애인도 섣불리 여행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인도 여행을 다녀오며 자신감을 가졌다. 이후로는 국내는 물론 유럽·북미·아시아·호주 등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신나게 여행했고 여행담을 방송·칼럼·강연 등을 통해 공유했다. 최근에도 이들을 위한 국내 여행 안내서인 ‘아름다운 우리나라 전국 무장애 여행지 39’를 펴냈다.

전 작가는 2008년부터는 비영리 사단법인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를 꾸려 무장애 여행 확산을 위한 사회 활동도 하는 중이다. 그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활동이 겸해지지 않으면 내가 갈 수 있는 무장애 여행지 역시 제자리걸음을 할 뿐이기에 피할 수 없는 선택지였다”고 했다. 실제로 이들의 노력은 우리 세상을 조금씩 바꿨다. 덕수궁 석조전 2층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가 운행되기 시작했고 광화문 스타벅스에 경사로가 생겼다.

전 작가는 이런 변화가 단순히 장애인만을 위한 목적을 넘어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작가는 오키나와나 하와이·대만·싱가포르 등의 경험을 떠올리며 “지하철 등 대중교통이나 휠체어 화장실, 문화재·관광지의 무장애 공간 등에 대한 접근성이 좋은 것은 물론 작은 식당에 홀로 들어가도 모두 친절하게 응대해주는 등 서비스 접근권도 뛰어나다”며 “몇 달 살아도 불편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에 ‘한 달 살기’를 떠나는 관광 약자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관광 약자들은 여행이 쉽지 않기에 한 번 만족한 여행지를 만나면 충성도가 상당히 높아져 여러 번 재방문을 하게 된다”며 “장애인 한 명이 여행한다는 건 도와주는 사람을 포함해 2~6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측면도 눈여겨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런 측면에서 전 작가는 요즘 문화체육관광부 아래 장애인의 시점으로 관광산업을 조망할 수 있는 전담 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관광 약자들에게는 가고 싶은 여행지와 가기 좋은 여행지가 따로 있어요. 비단 장애인뿐만 아니라 휠체어 이동이 좀 더 편한 어르신이나 이동이 어려운 임산부 등도 마찬가지죠. 결국 여행은 비슷한 선택지 내에서 고르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교통 및 관광지 접근성이라는 건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한국에 매력을 느껴 여행하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들마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때 아닐까요.”


글·사진=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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